[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빛에의, 말에의 갈망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빛에의, 말에의 갈망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12.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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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자신에게 “빛깔이며 색깔이며 형상이며를 분별하던” 저 안구가 파괴되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리하여 내 자신만의 더 많은 내광(內光)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자위했다.

(<죽음의 한 연구(하)> 270쪽 말미-271쪽 초입)

그는 그러므로 저러한 파괴 위에서 명상하고 정진하며, 정액처럼 진하고 순수히 괴어드는 말이며 빛을, 하나의 내인(內人)으로 존경하고, 소멸 속으로 나아가서도 오히려 더 살이 굳어지는, 금(金)을 성취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271쪽)

그럼에도 그는 어쩔 수 없이, 빛에의, 말에의 갈망으로 미쳐서, 울을 뛰어넘고 걷잡을 수 없이 뛰어 돌아다니려는 정신에 그러므로,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매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아, 나는 계집만 같구나. 서방 잃은 계집만 같구나.”, “나는 창녀로구나. 그가 누구이든, 나를 억세게 가슴에 안고, 나의 빈 입을 채워줄 혀를, 나를 암흑 가운데 우람히 빛나줄 억센 근육의 사내를 기다리는 창녀로구나. 색념이 드센 요니만 같구나, 나는 그냥 하나의 요니 전체로구나, 비인 연(蓮)이로구나, 연이로구나”라고 탄식했다.

주인공이 뒤를 좀 볼 일로 자신의 토굴을 떠나 늪 바닥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도저히 되찾아갈 수가 없어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었을 때에 ‘촛불의 응시자’가 자기가 지은 밥을 가지고 왔다. 촛불중은 대략 주인공의 사정을 눈치 채고, 자신이 쌀가마니 따위를 묶었던 새끼줄을 좀 갖다 토굴에 이어 줄을 매어줄 터이니 뒤볼 일이라든가, 또는 조금 걷고 싶을 때는, 그 줄의 다른 끝을 쥐고 토굴을 떠나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내주었다. (272쪽)

그러면서, 촛불중은 주인공에게 어디서 손님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 촛불중의 음성은 낮고, 쉬었으며, 어쩐지 침울했다. 주인공이 느끼기에 오늘 따라 촛불중은 낯선 사내가 되어 있었는데, 촛불중의 마음씀은 노파답게 자상스러운 듯했으며, 손놀림은 사미답게 겸손하고 따뜻한 듯 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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