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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털고 망망대해 파도소리에 희망을 읽다[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8)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19.12.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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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속초가 동적인 항구도시라면, 묵호는 정적이다. 묵호는 강릉시 묵호읍과 삼척군 부평읍이 80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동해시로 재탄생했다. 묵호의 원래 이름은 먹호. 마을에 검은 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무연탄을 수출하던 항구여서 무연탄이 개를 검게 한데서 유래했다.

묵호항 일출

묵호등대 가는 길에서 만난 한 여인과의 인연을 잊지 못한다. 속초등대 답사 후 속초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 승객은 아이 업은 새색시였다. 얼굴이 그늘진 그녀는 나에게 핸드폰 좀 쓰자고 했고 여기저기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다 수면은 늘 일렁인다. 깊은 수심에는 크고 작은 생물들이 온몸으로 해류를 헤치며 산다. 인생도 그렇다. 산다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이고 다시 풀어가는 여정이다. 진창의 뻘밭을 거닐고 헤쳐 가는 길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어부들의 거친 삶을 바라보며 그런 인생을 반추한다.

바다는 물이 차고 다시 썰물로 비워내기를 반복한다. 썰물의 뻘강에서 작은 물길을 따라 진창을 뒤집어쓰고 수평선을 향하는 물길을 발견한곤 한다. 물이 다 빠진 뻘 위에는 수많은 고둥과 갯지렁이가 꿈틀댄다. 팔딱이는 장둥어를 보면 인생은 오십보백보임을 실감한다. 지구촌은 0.4%의 갑부와 나머지 일원들이 살고 있다. 사는 게 갯물 같지만 가슴 칠 일도 아니다. 바다는 이내 수평으로 수평선을 그려낸다.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버스는 꼬부랑 산길을 따라 휘어지고 다시 평지로 펴지는 길을 가고 있었다. 길은 곡선으로 직선으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하며 이어졌다. 여행은 그런 여정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혜를 깨닫는 일이다. 인생은 나그네다. 길 위를 걷는 과정은 또 다른 삶을 읽는 일이다.

등대로 가는 논담길

묵호터미널에서 그녀와 목례 후 등대로 가는 길에 노을이 떨어졌다. 떠오르는 해는 반드시 기운다. 기우는 해는 내일 반드시 다시 떠오른다. 그런 저런 생각의 갈피를 접고 펴기를 반복하며 해안선을 걸었다. 파도도 사랑도 삶도 부서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파도는 그렇게 밀려오고 밀려간다. 인류와 자연은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성장한다.

문득, 유치환 시인의 시 ‘깃발’이 떠올랐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대에 찢어질 듯 매달려 나부끼며 저 바다로 가지 못한 애타는 아픔. 시인은 이를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역설했다. 망상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는 영락없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아니 ‘소리 멎은 아우성’이었다. 헤어진 그 새색시의 속울음 같았다. 하얀 거품 물고서 일어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바다는 순간, 적멸했다. 적막함마저 사라지는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침묵도 또 하나의 상징기표인 이유를 실감했다. 그런 자연 앞에서 여행자는 이방인이 된다.

묵호바다와 오징어덕장

여행의 목적지인 묵호등대는 동해시 묵호진동 산2-215번지에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해안누리길 코스에 포함돼 있다. 망상해수욕장에서 동해해양연구센터를 거쳐 까막바위에 이른다. 이 바위에서 묵호항 방향으로 계속 해안길 따라 1.9km 걸으면 어시장 뒤로 등대 오름길 푯말이 보인다. 붉고 푸른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목길에는 옛 묵호의 추억을 떠 올려주는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골목길은 어시장 망상해변 방향에서 슈퍼 쪽을 따라 올라가면 출렁다리를 거쳐 올라가고 어시장에서 망상해변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들어서면 골목길을 따라 등대에 도착한다.

그 때 낮선 번호의 핸드폰이 지∼잉 진동음을 냈다. 그 새색시였다. “선생님! 묵호 오빠네 집에 잘 도착했어요. 핸드폰 고마웠어요. 번호가 찍혀서 전화 드렸어요. 여행 잘 하고 돌아가세요....” 이런 것을 잔정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그녀와 길 위의 만남은 오래된 흑백 사진첩처럼 묵호여행의 알뜰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묵호 어시장

묵호등대 아래는 어판장이다. 수많은 어선들이 드나든다. 마을 뒤로는 동모봉에서 내려온 줄기가 감싸 안은 자리에 창호초등학교가 있고 북쪽 산줄기 끝에 묵호 랜드마크인 등대가 있다.

묵호 특산물은 오징어다. 오징어덕장마다 오징어가 떼로 널려 있고 집집마다 지붕과 옥상, 앞마당 빨랫줄과 담벼락에도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쉽게 마주한다. 그 다음 어종이 명태. 갓 잡은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건조 시킨 것은 북어,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얼렸다가 녹였다가 하면서 말린 것은 황태라고 부른다.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겨울에 잡은 것은 동태다. 명태 새끼인 노가리는 거개 묵호에서 생산해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애주가들의 명품 안주다.

영화촬영 기념비

묵호항 북쪽 산중턱에 논골 마을이 있다. 논골은 옛날 산 중턱에 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동해시는 이 길을 따라 등대까지 이르는 코스를 테마여행코스로 개발했다. 논골담길은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높아 구부정한 할머니들은 그 시절 아이를 업은 아낙으로 연탄을 머리에 이고 물 양동이는 손에 들고 매일 같이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지게꾼들은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에 한 가득 담고 이 길을 숨 가쁘게 올랐다.

그 고불고불 100미터 길 정상에 묵호등대가 있다. 묵호항은 1930년 항구로 개발돼 1980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 시절에는 주민과 외항선원, 오징어선원들로 넘쳐나는 거리였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규모의 항구로 자신만만하게 뱃고동소리를 울렸고 석탄 시멘트를 수출하며 한국수출 역군의 기항지였다.

묵호등대와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제는 그 뒤안길을 묵호등대에서 읽는다. 등대는 1963년 6월8일 22미터 백원형 철근콘크리트 등탑으로 설치돼 묵호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돕고 있다. 묵호 사람들의 애환을 보듬고 해발 67m에 서서 10초에 한 번씩 불빛을 보내준다. 2003년 10월 국내기술로 개발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로 뿜어내는 불빛은 42km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아주 강력하게 불빛이다. 안개가 끼면 음파라고 부르는 소리신호를 보낸다. 55초마다 드넓은 바다로 한 번씩 소리를 울려준다. 그 소리는 3.7km까지 들린다.

묵호등대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이자 일출 전망 포인트다. 동해는 ‘동(動)트는 동해’다. 동해시는 해 뜨는 항구도시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대표적인 일출감상 포인트인 묵호등대 앞마당에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묵호항을 떠나는 여객선

묵호등대 실내전시관에는 등대전시실과 전망대가 갖춰져 있다. 야외광장은 야외전망대와 천사의 날개 포토존이 꾸며져 있고 모닥불 조형물과 ‘미워도 다시한번’ 영화촬영지 기념비가 세워졌다.

석탄항구에서 이제는 맛 기행과 일출명소로 거듭난 새로운 묵호항은 어부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러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역동하는 묵호의 박동소리와 여행의 향기를 담고 한결같이 출렁이는 동해로 떠나보자. 생동하는 동해를 밝혀주는 등대에서 다시 떠오르는 희망찬 새해 일출을 바라보자. 문의: 동해시 관광과(033-530-2231)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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