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박월선의 ‘별을 닮았다’ (2)

[단편동화] 박월선의 ‘별을 닮았다’ (2)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12.11 09:47
  • 수정 2019.12.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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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우리 반 친구들은 나를 비비공주라고 부른다. 듣기 싫지만 흉터를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체육 시간이다. 땀을 흘리면 비비크림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씨가 더운 날은 땀이 더 많이 난다. 땀은 비비크림을 녹이고 흉터를 보이게 한다. 그래서 찬바람 나는 가을과 겨울이 좋다. 찬바람이 나면 예쁜 스카프로 턱에 난 흉터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배가 아프다고 말하고 보건실로 갈까? 아니면…’

“또, 아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재희가 다가왔다.

“많이 아파?”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 체육 수업이 싫다. 나는 보건실로 들어가서 잠시 누워 있다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가 일하는 <24시 김밥>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엄마는 늘 바쁘다.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엄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조퇴하고 집에 오는 것에 대해 포기한 눈치다.

엄마와 내가 다락방에 산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아빠가 운영하던 통닭 납품 사업이 망하고 엄마는 사촌 이모네 <24시 김밥>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가게 위에 있는 복층 다락방에는 아직 풀지도 않은 짐들이 상자 속에 들어 있다. 다락방 쪽문으로 나가면 옥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별구경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옥상은 나의 탈출구다. 옥상에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펑 뚫린다.

‘아빠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겠지?’

엄마는 내가 밖에 나가는 것보다 옥상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아빠의 사업이 잘된다고 믿었다. 일 년 전에 우리 가족은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앙코르와트를 구경하고 아빠가 기념품 가게에서 손거울을 사 주었다. 그때 손거울 뒤에 새겨진 ‘압살라’를 처음 보았다.

우아하게 휘어진 손동작과 기다란 손가락 장식도 특이했다. 손동작마다 뜻이 담긴 춤은 신비했다. 세련된 미소로 손가락 춤을 추는 ‘압살라 무희’의 미소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압살라! 내일은 날씨가 시원했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손거울 뒤에 새겨진 ‘압살라’에게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말을 걸면 ‘압살라’가 살짝 웃는 듯 했다. 마치 아빠가 옆에서 웃어 주는 듯 마음이 편해졌다.

아빠가 없는 날들은 너무 외롭다. 나는 옥상 구석에 서 있는 자전거를 만지작거렸다. 아빠가 준 선물이기 때문에 이사 올 때도 버릴 수 없었다. 휴대폰을 열고 문자를 보았다. 소식이 없다. 벌써 열흘이다. 불안하다. 아빠가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아빠가 캄보디아로 떠나면서 약속했다.

“우리 딸! 아빠가 돈 벌어서 꼭 흉터 수술 시켜 줄게”

항상 들고 다니는 크로스 미니 가방에서 비비크림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비비크림이 거의 비었다. 오늘 아침에 너무 많이 발랐나? 비비크림을 산다고 돈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할 것이다.

“비비크림 그만 발라. 턱에 난 쪼그만 흉터를 누가 관심을 갖는다고…”

엄마는 내 고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관심이 없다. 아빠에 대해 말을 꺼내면 대답이 없다. 그런 엄마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 엄마는 아빠가 안 보고 싶은 걸까? 이러다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

아빠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지만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 아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초등 2학년 여름이었다. 아빠가 동우회 체육대회에서 경품으로 새 자전거를 받았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데 아빠는 새로 산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갔다.

“우리 딸 자전거 타기는 아빠가 가르쳐 줄 거야. 처음엔 누구나 서툴지.”

아빠는 무섭다는 나를 억지로 자전거에 앉혔다.

“아빠! 잘 잡아야 해. 놓으면 안~ 돼!”

“아빠만 믿어. 자, 간다!”

한참을 타고 달려갔다. 모퉁이를 돌 때였다. 전화벨이 울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전거가 중심을 잃었다.

“어, 어. 아빠, 뭐해?”

꽝-당! 자전거가 넘어지고 나는 공원 화단 모서리에 턱을 찧었다.

“아빠! 피~ 피가 나”

 

박월선(한우리독서토론논술 전주덕진구 학원, 동화작가)

 

데일리스포츠한국 12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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