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장은영의 ‘내 멋대로 부대찌개’ (3)

[단편동화] 장은영의 ‘내 멋대로 부대찌개’ (3)

  • 기자명 장은영 기자
  • 입력 2019.12.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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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장은영 기자] 승규의 말에 윤서는 된장을 풀고 건영이는 호박과 두부를 썰었다. 발표할 걱정 때문인지 총각김치를 꺼내는 내 손이 조금 떨렸다.

“자, 요리가 끝났으니 각 조 발표자는 앞으로 나와서 자기 조의 요리에 대해 설명을 해보자”

1조의 요리는 카레였다. 감자와 양파가 냄비 바닥에 눌러 붙고 탄 게 보였다. 발표하는 아이가 변명을 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얼굴에서도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곁에 앉아 있던 건영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민채야, 이거 내가 아끼는 부엉이인데 빌려줄게”

“뭐?”

“이따가 발표할 때 안 떨리게 얘가 두 눈을 부릅뜨고 널 지켜 줄 거야.”

건영이가 내 손에 부엉이를 쥐어 주었다.

뒤에 앉아 있던 승규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민채야, 나처럼 한 번 해봐”

승규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나는 승규가 시키는 대로 똑같이 따라했다.

“괜찮지? 걱정 마, 할 수 있어”

나는 승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2조는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밥 위에 올린 고명들의 크기가 엉망이었다. 게다가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어 무지 매울 것 같았다. 발표하던 아이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자꾸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얼굴도 빨개졌다.

앞에 앉아 있던 윤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뒤돌아 앉아 손으로 부채를 부쳐 주었다. 나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3조 발표자 앞으로”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고 일어섰다. 윤서, 승규, 건영이가 파이팅을 해 주었지만 마이크 앞으로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저희 조가 만든 요리는 부, 부대찌개입니다”

내 말을 들은 우리 조 아이들이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승규는 자리에 앉아 온몸을 틀면서 당황스러워했다. 다른 조 아이들이 고개를 빼고 된장찌개가 놓여 있는 우리 조 탁자를 쳐다보았다.

“저게 부대찌개라고? 내가 먹어 본 부대찌개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맞아. 말도 안 돼. 저게 된장찌개지 무슨 부대찌개야?”

다른 조 아이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건 된장찌개예요. 하지만 저는 부대찌개라고 말할래요. 요리를 정하고 준비하면서 까칠했던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 대단한 찌개, 그래서 우리 조가 만든 요리 이름은 부대찌개입니다”

내 발표가 끝나자 우리 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규는 휘파람 소리를 짜내느라 입술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제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209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120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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