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1.20 09:44
  • 수정 2019.11.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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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너무도 깐깐한 교장 선생님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나이든 선생님들도 아무소리 하지 못하고 교장선생님 뜻에 따르고 있었다.

초임인 내가 입도 벙긋하지 못한 것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교육청에서 교직원들이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퇴근 했는지 감사를 나온 적이 있었다. 감사팀은 퇴근은 고사하고 전 직원이 불을 밝혀놓고 종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우리 학교처럼 열심히 근무하는 학교가 흔치 않을걸”

자랑스러워하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라니.

그 학교에는 교직원의 생일이 되면 집에 초대를 하는 관행이 있었다.

무척도 부담스러운 그 행사는 그냥 당연한 듯 이어졌다.

우리 집에서 내 생일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종갓집 종부였던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온갖 정성을 다해 생일상을 차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입니다”

선생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 어머니가 용기를 내어 교장선생님께 고개를 숙였다.

“몸도 약한 딸아이가 막차를 놓치고 밤늦게 돌아와 너무 힘들어하니 6시 15분 막차를 탈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낸 우리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종례는 6시에 시작되었다.

그 교장선생님은 참 특이한 분이었다. 학교 안 관사에서 살았는데 일숙직 교체 시간이 되면 전화로 보고를 하게 했다.

“교사 아무개입니다. 일숙직 교체 이상 없음을 보고 합니다”

더구나 밤 숙직을 하던 선생님들은 학교를 순찰하며 관사 옆을 지날 때 초인종을 누르라고 했다. 한꺼번에 몰아서 순찰함에 사인을 할까 싶어서였다.

하룻밤 8번의 순찰 때마다 누르는 초인종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교장선생님은 잠을 잘 수나 있었을까?

나이든 선생님 한 분이 작정하고 양철대문을 시간마다 발로 차 버렸다고 한다. 젊은 교사는 시간마다 몽둥이로 대문을 두들겨, 부셔지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서야 초인종 누르는 것은 그만두게 했다.

그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사범학교의 심상과를 나온 엘리트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쩜 그렇게 인정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를 볶아야 점수를 따서 큰 도시로 전근할 수 있거든”

선생님들이 수근 거렸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 후 나는 그 학교를 떠나 좀 더 작은 학교로 전근을 갔다.

같은 동네 여교사가 먼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고, 나도 밤길이 무서워 그 학교를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전근을 간 학교에서의 교장선생님은 아버지처럼 나를 대해 주셨다. 겨울 방학 일직 날 눈이 많이 내렸다. 일직을 하러 학교에 갔더니,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나를 돌려 세웠다.

“일직은 내가 하면 돼. 길이 얼어붙어 버스가 안 오면 어떡하나? 책임은 교장이 지면 돼”

같은 교장선생님인데 어쩜 그렇게 다른 두 분이었는지 모른다.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었던 두 분이었다.

교장선생님 못지않게 어려웠던 초임지의 사모님. 특히 우리 여교사들은 사모님께 흠을 잡히지 않으려, 말 한마디에도 조심을 했다.

그러나 추운 날이면 관사로 손을 잡아끌어 뜨거운 고구마를 손에 쥐어주셨던 두 번째 학교의 사모님. 그 남편에 그 아내였던 것 같다.

요즘 선생님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코웃음 칠 이야기들이 그 시절엔 많았다. 유신의 칼바람이 매서웠던 그 시절에 무슨 일인들 가능하지 않았을까?

<뒤바뀐 순서> - 1

힘겨운 가을 운동회가 끝났다. 좀 쉬고 싶었지만 이어서 군 무용경연대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회 무용과는 차원이 다른, 경연대회 무용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시 학교에서는 전문가에게 안무 지도를 받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교사 혼자서 지도하고,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 의상 장식도 해야 했다. 12학급의 작은 학교에 여교사는 나 혼자였다. 무용을 잘 하는 유 선생님은 마침 출산휴가 중이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1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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