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독일장교 별명을 가진 엄한 교장 선생님의 눈 을 피해 딸감 공수작전에 한마음으로 뭉쳤을 아 이들.
“아픈 선생님을 위해 불을 피워준 건 고맙지만 불은 위험하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렴. 정 말 고맙다”
나는 어느새 목이 메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망보는 일
나뭇가지를 줍는 일 등 모두 역할분담을 해서 난로를 피웠다고 했다. 그 애들은 어느덧 내 보 호자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 그중 한명인 효선이에게서 전화가 왔 다.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내 책 을 발견했단다. 출판사에 연락을 해도 개인정보 를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을 당했단다. 여기저기 어렵게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한다.
“선생님 뵙고 싶어요”
나는 간곡하게 사양했다. 40년 전 젊고 예쁜 (?) 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고맙고 멋진, 내 친구! 1>
‘와! 저 선생, 되게 멋있다’
‘연극배우 윤석화를 많이 닮았는데?’
‘역시 도시에서 와, 세련 되 보이네’
‘목에 두른 오렌지색 작은 머플러가 잘 어울리 네. 내가 하면 안 어울리겠지.’
전입교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내 눈길은 그 녀에게로만 향했다.
교사들이 발령을 받은 3월 초였다.
30년 전인 그때는 여교사가 귀했다. 귀한 여교 사가 10 여명이나 발령이 나서 모두 술렁거렸다.
시골 곡성에 광주 여교사들이 몰려와 보탠 탓 이었다. 광주에서 10년을 근무하고 시골로 나온 교사들이었다.
나 또한 곡성에서 가장 큰 학교로 발령을 받은 터라 가슴이 설레었다. 시골교사인 나는 도시에 서 온 여교사들의 멋진 옷차림에 자꾸 주눅이 들 려고 했다.
그 중에서도 그녀는 내 시선을 더 끌었다.
어쩐지 지적이고 멋있게 보여 호감이 갔다.
그런데 기분 좋게도 그녀와 동 학년이 되었다. 그녀는 멋진 외모에 아이들 교육까지 똑 소리 나 게 했다. 교장실 옆은 모든 교사들이 피하고 싶 은 교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교장실 옆 교실이 면서도 별 부담이 없는 것 같았다. 한창 말썽부 릴 3학년인데도 그 반 아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하며 즐거워 보였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 기만 했다.
그녀는 수업이면 수업, 생활지도면 생활지도 정말 똑 부러져 보였다.
‘역시 대도시에서 와서 다르네’
나는 그녀가 부럽기만 했다.
광주에서 열린 전국 소년 체전 마스게임을 지 도했다는 소문까지 있어 그녀가 더욱 멋있어 보 였다. 무용이라면 부끄러워 선뜻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인지라 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무용으로 다져진 멋진 자세와 걸음걸이는 사 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걸음걸이 쥑여 주네”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를 들으며 농담 좋아하 는 류 선생님이 한 소리다. 그녀와 나는 세 번의 동 학년을 하며 많이 친해졌다.
10년 연상인 그녀는 나를 예뻐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많은 것이 부러웠다. 그 중에서도 그녀의 멋진 옷차림이 너무 부러웠다.
“와! 선생님 이 옷 너무 예뻐요”
나는 그녀가 멋진 옷을 입고 올 때마다 감탄사 를 연발 했다. 그러나 광주 유명 의상실에서 만 든 그 옷을 해 입을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시골 교사인 내 형편으로는 입이 벌어질 정도의 고액 이었으니까. 생활에 여유가 있는 그녀를 그저 부 러워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보자기 하나를 내 밀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그녀 의 옷이었다. 내가 예쁘다고 감탄했던 진 보라색 투피스였다.
“여기 양장점에 맡겨서 이 디자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해”
나는 그 옷을 며칠 동안 양장점에 맡겼다. 그 후, 드디어 나도 멋진 옷을 입을 수 있었다. 하얀 물방울무늬가 번지듯이 있는, 연한 핑크색의 실 크 느낌 천으로 만든 옷이었다. 중국옷을 연상시 키는 하이 네크에 플레어 치마인 그 옷은 내게 너 무 잘 어울렸다.
그녀는 옷 없는 내가 입도록 디자인이 같은 진 보라색 투피스를 잘 입지 않았다. 그 뒤로도 그 녀는 두 번이나 더 고가의 옷을 보자기에 싸 와서 양장점에 맡기도록 했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옷 보따리를 들고 시내 버스와 직행버스를 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