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1.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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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3>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양 팀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앞서 달리던 선수를 따라 잡을 듯 말듯 할 때는 숨도 쉬기 어려웠다. 그 중 한 선수가 넘어지면 안타까운 비명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응원석에서 응원하던 아이들이 마지막엔 트랙선 가까이 몰려가 응원을 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흥분한 그들을 깃발로 막느라 교사들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앞서간 선수가 하얀 테이프를 가슴으로 끊으면 게임 오버였다.

“이겼다. 이겼다. 우리 청군(백군) 이겼다”

이긴 팀은 만세를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석으로 돌아갔고, 진 팀은 땅을 치며 서운해 했다.

계주가 끝나면 행진곡에 맞춰 청군 백군이 줄지어 모이고 이긴 편이 만세를 불렀다. 진편은 손뼉을 쳐주었다.

구경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운동장에 뒹구는 쓰레기 청소를 하고, 하늘에 펄럭이는 만국기를 걷어내는 것으로 모든 행사는 끝이 났다. 연필과 공책을 상품으로 받은 아이들도 돌아가고 텅 빈 운동장에 서면 모든 게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거의 한 달을 연습하고 고생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할 때의 그 허전함. 그리고 후련함이 떠오른다.

운동장을 볼 때마다 지금도 그 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린 보호자들 1>

교문 옆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는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학생수가 천명이 넘은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 1/5 도 안되는 작은 학교로 옮겼기에 많은 것이 생소했다. 그러나 학교 주변 풍경은 곧 내 마음을 끌어 당겼다.

학교는 논 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운동장가엔 살구나무가 빙 둘러 있어 봄이면 꽃 대궐을 이뤘다.

교직원 친목회가 있던 날이면 살구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했다. 놀다가 힘센 선생님이 발로 살구나무를 차면 잘 익은 살구가 우두둑 떨어졌다.

바구니 가득 살구를 주우며 우리 여교사들은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살구는 새콤달콤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전교생이 나누어 먹기에도 충분했다.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수세식 화장실과 새로 부임한 학교의 재래식 화장실이 말해주듯 두 학교는 시설면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그래도 그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마냥 좋기만 했다.

나는 4학년 담임이었는데 나보다 키가 큰 녀석들이 많았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돕고 자라서인지 일찍 철이 들어 의젓한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모르게 무던히도 나를 위해 주었다. 힘쓰는 일은 나를 밀어내고 저희끼리 해 치우던 믿음직하고 정 많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목련꽃이 예쁘다고 말하면 다음 날 책상 위에 목련꽃잎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는 우리 반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떨어진 꽃잎 중 깨끗한 것만을 골라온 것이라고 했다.

단풍 알록달록한 가을이면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써 넣은 노란 은행잎 묶음을 교실 가득 매달아주기도 했다. 나는 그 날 ‘노란 손수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도소에서 출감하는 남편을 위해 마을 앞 떡갈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수도 없이 달아놓은 이야기를.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당시 몸이 허약했던 나는 몸무게가 39kg 이었다. 겨울은 너무 추웠다. 옷을 껴입고 또 껴입어도 어찌 그리 추웠던지. 실내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야 난로를 피울 수 있었던 때였으니 지금도 그 겨울을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돋곤 한다. 지금처럼 따듯한 패딩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 날은 감기기운으로 몸이 으실으실 떨렸다. 애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이가 딱딱 마주치는 것은 참기가 힘들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엎드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후드득 후드득!

뭔가 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난로엔 불이 지펴있었고 연기는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추위에 떠는 담임을 위해 울타리 옆 나뭇가지를 주워와 난로 불을 피웠던 것이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1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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