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1.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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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너무 빨리 터져 맥이 빠지거나 아니면 너무 늦게 터져 가슴을 졸이기도 했던 경기다. 바구니가 터져 쏟아지는 색종이 테이프와 꽃가루! 그리고 반공, 방첩, 새마을 등 시대를 대변하는 글귀의 플래카드가 길게 펼쳐져 관중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운동회의 꽃은 역시 무용이다. 여선생님들은 무용을 나눠 맡아 얼굴이 검게 타고 목이 쉬도록 가르쳐야 했다.

70년대 중반,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 무용 지도할 여교사는 달랑 나 혼자였다. 선배 여교사가 출산으로 휴가를 받은 때문이었다. 여교사는 하나인데도 운동회 날 펼쳐질 무용의 종목 수는 변함이 없었다. 옆 학교와의 비교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1학년 무용

2-3학년 여학생무용

4,5,6학년 여학생마스게임

4,5,6학년 여학생 고전무용

4,5,6학년 여학생 농악놀이 등

5종목의 무용이 보편화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하나뿐인 여교사가 몸 약한 나였으나 그걸 신경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체중이 40kg 밖에 안 나갔던 나는 그걸 다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큰맘 먹고 고전은 빼달라고 한 4종목이었던 것이다.

1학년 무용은 평소 했던 것을 연습하면 될 것 같았다.

나머지 3종목을 지도하느라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2-3학년 끝나면 4,5,6학년 무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골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터라 늦게까지 지도 할 수는 없었다. 여학생들이 가기엔 위험한 산길이었기에.

쉴 시간도 갖지 못하고 계속 되는 무용지도에 목은 쉬고 정말 죽을 맛이었다. 무용지도가 끝나면 뽀얀 먼지를 분처럼 얼굴에 뒤집어쓰고 교실바닥에 누워 버리곤 했다.

어쩜 그렇게 미련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회는 학교행사뿐 아니라 마을 행사였다. 학부모들은 마을단위로 맛있는 음식을 이고지고 학교로 몰려왔다. 멍석을 깔고 축제 한마당을 즐기려는 것이다. 마을 대항의 달리기에 열을 올리며 큰소리가 오고 가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 선생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권하느라 학부모들은 바빴다.

운동회 날의 꽃! 무용이 운동장에 펼쳐지면 어르신들은 운동장 가에서 어깨춤을 추곤 했다. 농악 놀이로 꽹과리, 장구, 북 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신명났던 축제였다. 농악놀이를 참관하시던 교육장님께서 한 번 더 앙코르 공연을 요청하시기도 했다.

혼자서 애쓴 여선생에 대한 격려였을까? 아님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셨을까?

교장선생님은 운동회가 끝나도록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2년 뒤 30학급의 읍내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 학교에서는 무용 한 종목을 2-3명의 여교사가 함께 맡아 지도했다. 그 전 학교를 생각하며 땅 짚고 헤엄을 치는 기분으로 지도를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힘든 시절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손동작까지 기억나는 것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겠지만 2-3학년은 손가락에 노란 꽃, 보라색의 커다란 종이꽃을 달고 무용을 했다. 노란색원, 보라색원이 피었다가 사라졌다가 물결처럼 움직이던 기억이 어제인 듯하다.

노란색 개나리 같은 비닐을 감은 링을 양손에 들고 한 마스게임. 한 사람이 하듯 질서정연하게 펼쳐져 구경꾼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었다. 마치 개나리가 운동장 가득 피어나듯 선명한 노란 색이 햇볕아래서 화려했다.

긴 천이 교차되어 꼬아지던 농악놀이에서 보여주었던 지경놀이. 여러 가지 색깔의 긴 천이 새끼처럼 꼬아졌다가 다시 풀어지는 과정을 보며 술에 거나하게 취한 어르신들도 함께 따라 뛰곤 했다. 가을 하늘을 수놓던 무지개 색 천의 고운 빛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교사와 아이들이 겨루었던 사제 달리기. 달리기 못하는 여선생님, 힘이 펄펄 나는 젊은 남선생님과,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달리기 선수를 뽑아 달리는 경기였다. 여선생이 뒤떨어진 거리를 남선생이 따라내며 신나했던 달리기. 그런 선생님들을 따라잡는 어린이 팀과의 겨루기는 하늘을 찌르는 응원이 뒤따랐다. 누가 이겨도 좋았던 경기였다.

운동회의 마지막 장식은 언제나 청백계주였다. 그 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청군과 백군의 달리기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1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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