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가얏고 열두 줄의 소리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가얏고 열두 줄의 소리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11.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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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죽음의 한 연구(하)> 178쪽에서 주인공이 안뜰로 들어서자 오동이 우는 소리의 냄새와 청순한 계집의 태고스런 냄새가 동시에 퍼졌다. 그 냄새는 일단 코에는 신선했지만, 폐부에 스미고 나면, 소금이 되어버려 짜지고 그의 혼을 조갈에 부대끼게 한다.

그 소리는 발열 지랄육갑 다하고 나가떨어져, 무덤에 들어서도 저승으로는 못 가고, 그가 아무리 계집을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셔도 그의 혼을 갈증에 계속 떨게 했다.

그는 그 순간 아, 그녀의 가얏고 소리는 “무덤에 들어서도 저승으로는 못 가고, 달이 흰데도 제놈의 봉분 위에 요요히 나앉아, 우니다가, 우니다가 녹아지면 한 알맹이 흰 소금이 되었다가, 녹아져서, 냄새만 바람에 불려가서, 봄 꽃 질 때쯤이나 돼설랑가” 싶었다.

그는 소리에 이끌려 섬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눈 안으로 활짝 열린 쌍문 미닫이 앞에 “소복으로 가야금 앞에 앉아 있는” 그녀가 가득 들어섰다. 그녀는 현을 퉁기지는 않고, 그에게 “좀 올라앉으시지 않으셔요?”라고 했다.

그가 어중간히 마루 끝에 걸터앉자, 그녀의 섬섬옥수가 흰 비둘기처럼 비상하며, 저 죽은 가얏고 위를 춤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러기발 위에 얹어진 열두줄의 춤추는 소리는 그에게 하나의 괴력으로서 체험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하나의 죽음이, 처음에 아주 느리게 살아나고 있었는데, 그 때는, 가얏고 위를 나르거나 춤추는 손은 손이 아니라 온역이었으며, 청황색 고름이었으며, 광풍이었고, 그것이 병독의 흰 비둘기들을 소금처럼 흩뿌리는 것이었다. (179쪽)

춘기의 광풍에 들뜬 그의 영혼은 그녀가 뜯는 가얏고의 현과 서러운 음률이 더해져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는 가공할 만한 이 하나의 푸닥거리, 한 장면의 신굿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가얏고의 연주를 들으며, 한갓 덧없음으로 한바탕 뒤집혔던 저승이 다시 소롯이 닫겨 버렸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굿에서 ‘무감(굿을 진행하는 중간에 굿을 의뢰한 집안 식구나 굿을 참관하던 사람 중에서 무당의 쾌자를 빌려 입고 춤추는 일)’을 쓰고 힘차게 도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녀의 가냘픈 손을 무녀로서 존경하고, 소리의 백년잠을 일시에 깨어 흩뿌리는 그 손의 주술을 두려워하며 무릎을 끓어, 떨림으로 그 손을 모두어 쥐었다. (180쪽)

그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잡았던 그녀의 손과 입을 맞추며, 그의 가슴에 꼭 대고 있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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