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주인공의 화풍병(花風病)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주인공의 화풍병(花風病)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11.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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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하)> 176쪽에서 주인공은 장로 댁의 못가 죽의자에 앉아 무심히 연꽃을 들여다보다가 ‘구름이 넋 빠뜨리고 가는’ 호숫가에서 보았던 저 계집의 치마폭에 어렸던 연을 떠올렸다. 그는 문득 그 계집이 자신의 가슴 속 깊이 비집고 들어와 한 포기의 붉은 연이 되어 뿌리를 내려 그의 심정을 갉아먹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붉은 연의 세근은 간질거리고, 그 줄기는 억셌으며, 그 꽃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는 결코 번뇌가 아니어서 그는 그것으로 인해 더욱 더 아파지기를 희망하는 것이었다. 내 보기에 그것은 그녀를 향한 춘심이 동한 탓인지라 그것을 ‘화풍병(花風病)’이라고 불러야 옳을 듯하다.

그가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을 때, 울 넘어로 가얏고 열두 줄 우는 가락이 들려왔다. 서른 세 해를 사는 동안 ‘날 것인 채로의 소리’만 접해왔던 그에게 울 넘어로 들려오는 이 가락은 마치 심청인양 그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고, 눈을 환하게 했다. 그 소리는 잘 가다듬어져 그에게 “공명관에 푹 담겨, 삶겨진 소리”로 들렸다.

소리는 언젠가 한 번 촛불중과 이 댁의 숙녀가 같이 걸어 나왔던, 저 못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건너간 다리 건너 쪽 울안에서 울려 넘어오고 있었고, 그에게 지금껏 없었던 것이 가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것을 갈마의 센바람 탓이라고 치부했다.

한 그루의 오동꽃을 흩뜨리는 저 소리 같은 계집, 계집 같은 소리로 인해 그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예의 그 침모가 손질하던 빨래를 정리하다 말고 일어서며, 그에게 뭘 도와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화들짝 든 그는 자신의 무례함에 스스로 당황해하며 침모에게, “아, 저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 고운 음악이 혹시 여기서 울려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따라들어와본 것이었습니다만.”하고, 짐짓 되돌아 나오려 했다. (177쪽)

침모는 그에게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서두르는 걸음으로, 동편채의 중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웃는 얼굴로 다시 나와 “아씨께서 스님을 좀 뫼셔 오시라는 말씀이십니다”라고 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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