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1.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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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도 괴로워-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간식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하는데, 그녀가 울먹였다.

“저는 이것도 잘한다고 맡기고, 저것도 저만 할 줄 안다고 맡겨요. 고학년을 맡아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나중에는 서러움이 북받쳐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다. 모든 여교사들이 쥐죽은 듯 숨소리도 못 내며 얼음땡이 되었다.

모두들 그녀는 재능이 뛰어나니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까? 우리는 할 줄 모르니 잘하는 그녀에게 맡기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을까?

우린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임 후, 우린 그녀의 일감을 나누어가졌다. 그녀만한 재능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해서 그녀의 짐을 덜어주었다. 물론 그녀가 하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녀를 힘들게 혼자 두진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듬해에는 교장, 교감 선생님도 그녀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는 저학년 담임을 맡게 했다.

그 뒤로도 그녀의 재능은 여러 곳에서 빛을 발했다. 열정적으로 합창을 지휘하는 모습은 우리들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물론 재능도 있지만 노력 또한 많이 기울였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퇴직을 한 그녀가 고전무용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하시지 그랬어요?”

학원 원장이 안타까워했단다.

“정말 아깝네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나셨는데”

소질을 타고나서 그녀의 춤사위가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한삼자락 휘날리며 한 마리 학처럼 고전무용 시범을 보이던, 그녀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생각난다.

그녀는 춤을 추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며 퇴직 후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가고 있다.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녀가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

<고마운 분들, 잊지 못할 선물>

부족한 나에게도 고맙게 대해 준 학부모들이 많았다. 5월이면 더 생각나는 분들이다.

태민 엄마

겨울방학이 끝난 개학날이었다. 하필 전날부터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교실 청소를 하려고 아침 일찍 등교했건만 걸레마저 빨 물이 없었다.

당황한 내 앞에 바람처럼 나타난 태민 엄마. 그 분 손에 들린 커다란 비닐 봉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걸레들이었다. 아이들 책상과 의자를 꼼꼼하게 닦아주고 아이들이 오기 전에 살며시 교실 문을 나가던 태민 엄마. 그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규, 현규 엄마

연속해서 귀한 두 아들의 1학년 담임을 맡은 나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주신 분이다. 예쁜 화분, 멋진 꽃다발로 나를 감동시킨 분이다.

그보다 더욱 잊혀 지지 않는 것은 교실 청소를 도와줄 때의 일이다. 추운 겨울에는 가장 추운 곳을, 여름에는 햇볕이 따가운 더운 곳을 찾아 유리를 뽀드득 소리 나게 닦아주던 정성이 기억나는 분.

선희 엄마

스승의 날 선물을 잊지 못한다. 유리병에 볶은 참깨를 고소한 냄새와 함께 넣고 예쁜 리본으로 묶어 보내주셨던 따뜻한 마음. 마침 그때 우리 집엔 깨소금이 다 떨어져가고 있었는데.

다원 엄마

자신의 첫 작품, 십자수 방석과 벽시계를 선물해 주신 분이다. 12 개의 숫자마다 예쁜 꽃으로 수를 놓은 시계는 오늘도 내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한 땀 한 땀 고마운 정성에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던 귀한 선물이었다.

유진 엄마

선생님이 예쁜 공주치마 입었다는 유진이 말에 직접 내 옷 색깔에 맞추어 떠 주신 가방. 지금도 나의 외출 시 정다운 동반자이다.

순정, 수미, 미정 예쁜 공주들의 엄마

3년 연속 세 딸의 담임이 되었던 나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해 주신,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을 주신 분.

다른 선물을 드릴 형편이 못되니 기도 해드린다고 했던 그 분의 정성이 이제야 더욱 마음에 사무친다. 몸 약한 선생님을 위해 새벽기도 나가서 기도 하신다던 종남이 할머니도.

데일리스포츠한국 11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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