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1.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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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용 주차장-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길치인 나는 좌회전 차선에 서 있었던 적도 있다. 곁에 있는 트럭 운전자 분께 울먹이며 사정을 말했다.

“내가 수신호해서 막아 줄 테니 어서 가세요”

나는 그 트럭 앞을 지나 우회전을 할 수 있었다.

세상은 험하지만 고마운 분들은 많다. 만일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시내를 한 바퀴 빙 돌아야했을 것이다.

행여 택시로 가기엔 너무 먼, 결혼식장에 참석할 일이 있을 때면 며칠 전에 남편을 태우고 미리 가서 길을 익히곤 했다.

그러나 친정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는 100km 가까운 거리를 날마다 혼자 운전하고 간 적도 있다. 열흘 동안 그렇게 다녔으니 이 선생님 말대로 나는 엄살을 부렸던 걸까? 아니면 궁하니까 통했던 걸까?

결국 퇴직을 하면서 차 운전도 그만두었다. 택시로, 버스로, 도보로, 마음은 편하다.

주차장을 양보해주신 선생님들. 나를 도와주신 운전자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아! 지금도 나를 태워주시는 고마운 분들! 그분들도 고맙습니다.

꾸벅!

<재능도 괴로워-1>

재능이 뛰어난 동료 여교사가 있었다. 수업, 무용, 음악지도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강 선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많은 재능을 타고 난 듯 했다. 중, 고등학교에서 체육, 음악교사로 근무하는 오빠들의 재능을 그대고 물려받은 듯 예체능에도 뛰어났다.

고학년을 맡은 그녀는 운동장에서 남교사들도 어려워하는 여러 가지 종목을 멋지게 시범을 보이며 지도하곤 했다. 나는 상상도 못할 뜀틀 넘기 시범을 보일 때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모든 것에 솜씨 없는 나와는 달리 했다하면 능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녀는 겸손하기까지 했다. 잘난 척이라도 하면 무시라도 해 버릴 수 있으련만.

그 전해에도 합창지도로 대상을 타왔던 그녀가 군내 수업평가에서 음악수업으로 최고상을 받아 학교의 자랑이 되었다.

가을이 되어 운동회를 하게 되었다. 무용종목을 놓고 여교사들이 모였다. 마스게임은 윤 선생님이, 농악은 내가 맡았다.

그러나 고전무용은 그녀 말고는 제대로 지도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맡겼다. 게다가 고적대 지도 또한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만큼 지도할 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회가 끝나면 군 합창대회가 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터였다.

몸이 열 개라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몸이 약한 그녀는 마음까지 여려 거절할 줄 몰랐다. 그 많은 종목을 혼자서 끙끙대며 지도하곤 했다.

게다가 고적대는 4,5,6학년 여학생 중에서 50-60명만 뽑아 지도해야했기에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각 반의 사정을 살펴 시간을 따로내서 지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악기지도와 함께 행진의 대형 연습도 해야 했다. 그러나 200 여명의 다른 여학생들을 쉬게 하고 고적대원들만 지도할 수는 없었다.

젖먹이 아기가 있으면서도 그녀는 고적대 지도를 위해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왔다. 수업시작 전, 시간을 이용해 악기지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에도 햇볕 쏟아지는 뜨거운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대형 지도를 했다.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멋진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여러 대형을 만들며 행진했다. 그럴 때면 동네 사람들까지 신기한 듯 기웃거리곤 했다.

깃털 꽂은 모자를 쓰고 지휘봉을 들고, 고적대를 지휘하는 대장은 많은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름이면 땀이 많아 화장도 못하는 강 선생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너무도 힘들게 지도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처음엔 도와주던 여교사들도 나중엔 하나 둘 손을 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다.

그렇게 그녀의 힘든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여교사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30여 년 전에는 남교사에 비해 여교사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여교사 모임이 따로 있었다. 지금은 남교사가 귀한 시대가 되었으니 세월이 흘러도 많이 흘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10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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