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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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나는 가끔 그 책을 꺼내 읽어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참 많다. 빨간머리 앤, 소공자,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 알프스소녀 등등등.

요즘 ‘작은 아씨들’을 펼쳐보다가 나의 작은 아씨들 생각이 났다.

시골 작은 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딸!

딸!

딸!

딸!

딸만 넷인 집이 있었다.

지금은 딸이 더 좋다고들 하지만 90년대인 그 시절에는 아들 없이 딸만 있으면 서운하다고 하던 때였다.

딸부자 집 그 딸들을 셋씩이나 담임을 했다.

둘째 순정이

셋째 순미

막내 미정이까지 딸 셋을 연달아 가르치게 되었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순정이는 4학년 때, 순미는 그 이듬해 3학년 때, 미정이는 1학년 때.

네 아이들의 특징도 동화 속 아이들과 비슷했다.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몸 약한 순미가(동화 속 셋째도 몸이 약했는데.) 학교에서 몸이 아파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처음 뵙는다며 미안해 했다.

“대신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그 말이 얼마나 고마운 줄 알지 못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기에 새벽기도가 어떤 건지도 모를 때였다.

둘째 순정이는 동화 속 둘째와 비슷해서,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썼다.

키가 크고 인물도 좋은, 거기다 공부까지 잘 한 순정이는 남자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탁월했다. 순정이가 나서면 어려운 학급일도 잘 해결이 되었던 동화 속, 조와 많이 닮은 아이였다.

셋째 순미는 예쁘고 마음 약한, 동화 속 셋째와 많이 닮아 있었다. 셋째 베스가 이웃 부잣집 할아버지를 너무 어려워하면서도 진심을 다해 선물을 전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순미도 그렇게 순수한 아이었다.

막내 미정이도 동화 속 막내처럼 똘똘하고 야무진, 욕심도 있는 아이였다.

그 애들을 바라볼 때마다 ‘작은 아씨들’ 생각이 나서 미소가 절로 나오곤 했다.

세 자매를 가르친 후, 시내 큰 학교로 옮겼다.

여교사들에게 퇴근 시간은 항상 바쁜 시간이다. 집에 가서 할 일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을 향해 급하게 걷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시장 안에 있는 팥죽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작은 아씨들 어머니였다.

반가움에 걸음을 멈추었다.

“시장하실 텐데, 팥죽 한 그릇 들고 가세요”

‘실로암 팥죽’집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는 작은 팥죽집이었다.

“네. 고맙습니다. 제가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해서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하루 종일 시달리다 퇴근 무렵이면 배가 많이 고팠다. 그러나 그 집에 들어갈 여유가 내겐 없었다. 직행버스로 1시간을 달리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집은 멀기만 했다. 그 무렵, 한약을 다려야할 사정이 있어 퇴근 시간엔 더욱 종종댔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작은 아씨들 어머니는 나를 불렀다. 그러나 한 번도 그 청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고, 이미 담임도 아닌 터에 그 집에 들어가 대접을 받을 주변머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 번 들어가 맛있게 먹을걸. 그게 그 어머니의 마음을 더 기쁘게 했을 것인데.

나중에는 들어와 팥죽을 먹으라는 대신 아이들의 근황을 전해 주기도 했다.

“순정이가 서울 Y대에 들어갔답니다”

“그 명문대를? 축하합니다. 역시 순정이네요.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어머니께서도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나 또한 기뻤다.

그 학교를 떠나 도시로 옮기면서 실로암 팥죽은 내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착한 순미는? 똘똘한 미정이는?

다 궁금하다. 작은 아씨들 동화책을 볼 때마다 그 자매들 생각이 난다.

그녀들이 행복하길! 그 엄마처럼 믿음 또한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그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두 손을 모아본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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