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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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교실에서>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여덟 번째 작은 이야기

저학년 교실의 책상 줄은 아이들이 자주 밀었다 끌었다 해서 삐뚤빼뚤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 선생님 교실은 다른 교실에 비해 항상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비결을 물어 보았더니 교실 바닥에 매직으로 책상 다리 위치를 그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 구멍에 책상다리만 맞추면 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우리 교실도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인사도 바르게!

글씨도 바르게!

자세도 바르게!

책상 줄도 바르게!

몇 번씩 강조했던 말이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나는 꼬맹이들과 함께 입을 모으곤 했다.

3월이면 교실에 척추 측만 증에 관한 사진을 걸어놓곤 한다. 자세가 좋지 않으면 척추가 굽게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심하면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아이들은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애 쓰곤 했다. 그런 아이들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애들이 항상 말했던 것처럼 자세도 바르게, 마음도 바르게 자라기를 바란다. 또 하나, 그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살아가기 힘들지 않는 바른 세상이 되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아홉 번째 작은 이야기

비위가 약한 내가 유난히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 토를 해 놓은 것이다.

저학년을 맡다보면 의례히 겪게 되는 일이건만 똥을 치우면서도 하지 않는 구역질이 왜 그리 나는지.

시큼한 냄새를 맡자마자 나까지 구역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눈물까지 찔끔찔끔 나오곤 했다. 어린애들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이들은 어쩌면 구역질 때문에 나오는 나의 눈물을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로 잘 못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토한 오물을 치우고 있는 나에게 선배 선생님이 비법을 알려 주셨다.

우선 토한 오물 위에 모래를 잔뜩 끼얹은 다음 비로 쓸어내고 걸레로 닦으라는 것이다. 그 방법을 쓴 후론 구역질도 눈물도 흘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가방이나 공책위에 토해 놓은 경우는 그 비법도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치울 수밖에.

열 번째 작은 이야기

창웅이 같은 아이를 맡은 건 행운이었다.

1학년을 힘든 학년이라고 했지만 아이들 모두가 창웅이만 같다면 손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웠을 것이다.

반듯한 행동, 똘똘한 발표, 명석한 두뇌, 글씨는 또 얼마나 잘 썼던지!

교과서와 비슷하게 바른 글씨를 써서 나를 감탄시키곤 했다.

가르침에 어쩜 그리 잘 따르던지. 아니 어쩔 때면 앞서가기까지 했다.

무스를 발라 곱게 빗은 머리를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면 창웅이는 매력적인 눈웃음을 치곤했다.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던 어는 날이었다.

저학년들이라 횡단보도를 건네주기 위해 아이들과 나는 이슬비를 받으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중을 나오던 창웅이 엄마를 만났다.

“선생님, 선생님은 우산을 갖고 계시면서도 왜 안 받으세요”

“아, 네. 아이들도 비를 맞는데……. 이따 돌아가면서 쓰려고요”

“그래도 선생님 고운 옷 젖는데 쓰셔야지요.”

“창웅이 엄마는 창웅이가 비를 맞는데 혼자 우산 쓸 수 있으세요?”

그러자 창웅이 엄마가 내게 바짝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께서 우리 창웅이 담임인 게 너무 기뻐요”

그 후 창웅이 엄마와 나는 서로 깊은 친밀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해에는 유난히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받았던 것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우산 사건에 감동을 받았다던 창웅이 엄마의 마음에 날개가 돋쳐 학부모 주위를 한 바퀴 돌았던 것일까?

이것도 해 줄걸. 저것도 해 줄걸. 그건 하지 말걸 등, 아이들에게 잘 해 주지 못한 일이 많기도 한 교직 생활! 그러나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주는 그 시절의 추억!

오늘도 그 추억들은 나를 미소 짓게 만들어 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23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10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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