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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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교실에서>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다섯 번째 이야기 : 버릇 고치기 1-2

나는 아이와 나란히 앉아 아이의 손톱과 내 손톱을 차례로 깎는다. 처음엔 내 손톱만 자르고 아이손톱이야 깎는 시늉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기는 시작이 된다. 그리고 달력에 ‘아무개와 선생님의 손톱 깎은 날’이라고 표시를 해 둔다. 교실에 걸린 달력에 자기 이름이 쓰이게 되니까 아이는 무척 좋아한다.

“자 이제 선생님 손톱도 네 손톱과 똑 같이 짧아졌으니까 손톱검사 하는 날 누가 더 많이 길었나 내기 하는 거다”

달력에 2주쯤 후의 날짜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나서 ‘손톱 검사하는 날’ 이라고 크게 써 놓는다. 그리고 달력에 표시된 날이 오면 나란히 앉아 손톱을 깎는다.

첫 번째 약속 날에는 어김없이 교사가 이기게 된다. 2주 만에 그 힘든 버릇이 고쳐 질리는 없기 때문이다.

“1회전은 선생님 승리!”

나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약을 올린다.

“선생님,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다음엔 제가 꼭 이기고 말 거예요”

1학년 어린아이들인지라 내기에 지고 나면 손톱을 물어뜯지 않으려고 기를 쓰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내기가 아닌 담임과의 내기이기에 아이들은 더욱 긴장하게 된다.

나는 수업시간에도 글씨를 쓰거나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을 무릎에서 떼지 않게 한다. 손을 책상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 선생님을 이길 수 있는 방법 알려줄까? 네 손을 무릎에서 떼지 않는 거야”

선생님을 이기려고 아이는 악착같이 무릎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얼굴이 상기된 채 손으로 무릎을 꼭 잡고 물어뜯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을 볼 때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집에서도 될수록 무릎에 손을 얹어 놓으라고 말해 준다.

두 번째 약속 날에는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손톱을 깎을 수 있게 된다. 담임의 과장된 칭찬에 아이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기 마련이다.

“선생님, 두고 보세요. 다음번엔 제가 꼭 이기고 말거예요”

세 번, 네 번, 약속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아이의 손톱은 점점 길어나게 된다. 몇 번은 시합 하루 전에 내 손톱을 미리서 조금 깎아놓는 반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시합 날엔 진정한 아이의 승리로 우리들의 손톱 기르기 내기는 끝을 맺게 된다.

내기를 통해서 손톱 물어뜯는 아이들 버릇을 고쳤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보석처럼 내 추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여섯 번째 이야기 : 버릇 고치기 2-1

뭔가 이상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영숙이는 혼자였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숨결도 가빠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숙이는 책상 모서리에 몸을 밀착시킨 채 몸 아랫부분을 부비고 있는 게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며칠을 두고 영숙이를 관찰해 보았다. 그랬더니 영숙이는 시간만 나면 책상 모서리에 몸을 대는 것이었다. 담임이 쳐다보면 슬그머니 멈추었다가도 이내 다시 시작하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영숙이의 이마엔 땀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예민한 문제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직접 이야기를 하자니 그 애가 부끄러워해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봐 적잖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기엔 마음이 급했다.

사흘쯤 지켜보다 영숙이를 불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 문을 나서고 있을 때였다.

“영숙아, 잠깐 나 좀 보고 가”

신발주머니를 손에 든 채 영숙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교실로 들어왔다.

“영숙아, 이리와”

내 앞으로 다가온 영숙이의 두 손을 나는 가만히 모아서 잡아 주었다. 영숙이는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내게 손을 맡긴 채 공손하게 서 있었다.

“우리 영숙이, 요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참 기쁘단다. 영숙이만큼 공부도 잘 하고 규칙도 잘 지키는 1학년은 드물거든? 그런데 우리 영숙이, 요즘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 것 같더라”

내 말에 순진한 영숙이의 희고 고운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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