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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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교실에서>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두 번째 이야기 : 그 약이 아니네?

“선생님, 친구들을 괴롭힌 제 버릇을 고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약속을 안 지킨 제 나쁜 버릇을 치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학년 꼬맹이들이 잘못을 저지른 후 손바닥을 한 대씩 맞고 하는 말들이다.

병을 치료해 준 의사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듯 자기들의 잘못을 가르쳐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이다.

학년 초부터 나는 아이들과 그런 인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어른들에게는 너무 유치한 말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1학년 어린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벌을 받는지 자기들 입으로 말하고 벌을 받은 후엔 꼭 감사 인사를 했다. 그래서 인지 다른 어느 해 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의젓하게 행동을 했다.

“선생님, 정현이 약 먹어야 해요. 대권이를 때렸어요.”

“선생님, 진수 주사 좀 놓아주세요.”

“아니야. 친구 잘못 일러바치면 너도 치료받아야 해”

남들이 들으면 여기가 약국이나 병원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치료니 약이니 하는 말을 썼다.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가는 애들을 볼 때, 화장실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얼마나 흐뭇했던가? 인사를 할 때도 어쩌면 그렇게 공손하게 하는지. 칭찬듣기에 바쁜 아이들이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할 때

“약 좀 먹어야겠네”

하면 금방 고쳐지곤 하던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작은 매로 손바닥 1대를 살짝 맞는 것을 아이들은 ‘약’이라고 표현했다. 그 매에 좀 더 힘이 들어가는 걸 ‘주사’ 맞는다고 했다.

매 한 대라는 말보다는 ‘약’ ‘주사’라는 말이 아이들에겐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1년 동안 ‘약’ ‘주사’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니까.

어느 날 유난히 마음이 여린 수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양호실에 가서 약 먹고 오렴”

“괜찮아요. 약 안 먹어도 돼요”

수진이는 아파 보이는데도 굳이 약을 안 먹겠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나는 수진이를 친구와 함께 억지로 양호실로 보냈다.

한참 있다 돌아와서 하는 말

“나는 아픈 약인 줄 알았는데 그 약이 아니네”

수진이는 우리들이 한 약속의 약인 줄 알고 겁이 났었나보다.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가슴이 뜨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순진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 그 약이 아니네?

엎친데 덮치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1학기가 끝날 무렵 장학지도 날이었다. 장학지도일이 되면 며칠 전부터 청소에 수업 준비에 학교는 긴장감에 얼어붙을 듯 했다. 수업과정을 머릿속으로 몇 번을 되새기며 장학지도 날을 기다리곤 했다. 손님 온다, 마당 쓸어라 기분으로 교실은 밥알이 떨어져도 주워 먹을 정도로 깨끗해지곤 했다.

그 날도 3교시에 장학사가 수업참관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2교시가 끝나고 화장실에만 다녀와 수업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눈을 초롱이며 수업 시작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선생님!”

영한이가 어기적거리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설사를 한 듯 반바지 밖으로 흘러나온 똥이 다리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버릇처럼 시계를 봤다. 수업 5분전이었다.

나는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똥 처리를 할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나는 거울 옆에 걸려있는 학급용 수건을 갖고 와 다리의 똥부터 대충 닦았다. 다음에 내 옆에 있는 교사용 수건을 챙겼다. 바지를 내리고 그 수건으로 아기들 기저귀처럼 채워주고 다시 똥 묻은 바지를 입혔다.

“영한아, 지금 빨리 집으로 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

영한이를 쫓듯 교실 밖으로 내 보냈다. 어기적거리며 멀어져가는 영한이 모습을 유리 창밖으로 바라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내 손의 똥냄새를 맡을 시간도 없이 수업 준비를 했다.

딩동댕!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시작종소리였다.

그날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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