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지옥, 죽음 자체의 또 다른 이름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지옥, 죽음 자체의 또 다른 이름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10.16 16:36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의 책 <죽음의 한 연구(하)> 82쪽에는 주인공이 강연을 통해 ‘원죄’와 죽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소승이 격렬하게 다투어 온 저 ‘원죄’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상기시키는 바입니다. 그것을 소승은 ‘죽음’ 자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들 속에서도 순화되지 못한 것이 가는 곳을 ‘지옥’이라고 하며, 그곳은 사탄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고 알려집니다.

(중략)

지옥이란, 생시에 지었던 죄업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장소가 아니라, ‘죽음’ 자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한번 죽은 몸은 두 번 다시 죽지 못하며, 영(靈)은 영생으로(로마 8:6, 고린도전 15:42-45) 반복되지만, 육신을 잃어 염태(念態)만을 갖고 있는 존재에게는, 고문이란 체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에 고통으로 하여 죄가를 삭이고, 영혼을 맑혀야 한다면, 이 세상 말고 그런 고장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상륭은 육신이 곧 ‘고통의 전 장소’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은 염태만 존재하는 “영으로서는 고통받을 수 없다는 것, 육신에 한번 억류당했던 혼이 아니면, 고전적 의미의 유계(幽界: 저 승)에의 여행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신이 ‘인간의 아들’의 살을 입어 세상에 나타난 관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칼 융의 정신적인 후계자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에리히 노이만(1905-1960)은 <의식의 기원사> 270쪽에 “죽음의 문제는 원래 이 세계의 연장으로서 피안의 세계를 간주하는 단순한 장치로 해결되었다”고 썼다.

중생(重生) 또는 재생과 부활의 모티브를 갖는 세계의 모든 신화에 의하면, 인간이 이승에서 겪게 되는 죽음은 결국 “자기변환, 부활, 그리고 (신적으로의) 고양”을 통해 ‘자기와의 합일’을 성취하며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FUTURA ENERGIA 심리영성상담소 seelenscan@gmail.com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