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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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언덕-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한 장 찍어 둘 걸.’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는 사진기가 귀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찍어대는 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그 강가에서 찍은 사진 생각이 났다. 운동회 날 동료교사와 나룻배 위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다. 그 사진에 혹시 코스모스가 찍히지 않았을까? 사진첩을 뒤져봤다. 그러나 카메라 앵글은 강둑이 아닌 강 쪽을 향해 있었다. 몇 년 전 그 곳을 지나가다 학교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학교는 폐교가 되어 있었다. 건물은 사라지고 그곳은 캠핑장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강둑의 코스모스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깨끗하고 멋있었던 백사장도 예전 같지 않고 초라해 보였다. 출발한 자동차 안에서 나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 때의 멋진 코스모스 언덕이 보일 것만 같아서다.

<머무르고 싶은 순간>

그 작은 학교는 읍 소재지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학교 앞 들판은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강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 놓은 삼나무가 하늘을 찌르며 사열하는 군병처럼 줄 맞추어 서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교실 뒤 유리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섬진강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한 학교에서 5년 근무가 끝나고 옮겼던 그 학교. 5년 동안을 걸어서 5분 거리의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 버스를 타고 작은 학교로 옮기다 보니 모든 게 서먹하기만 했다.

그러나 학교와 주변 풍경은 보상이라도 해 주듯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곧 그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3학년을 맡은 뒤 3개월 후, 연구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음악 연구 수업을 배정받자 나는 걱정이 앞섰다. 이제 학교생활에 막 익숙해지려는데 선생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업을 한다는 게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어떤 수업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리듬 합주를 해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오래전 일이니 그 당시에는 리듬합주가 흔한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악기들을 찾아내 먼지를 털어 내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모아놓고 큰 북, 작은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캐스터네츠 등을 챙겨 악기 연주를 지도 했다. 시골 학교라 합주는 처음인지 모두 신나 했다.

비록 큰북 채는 부러진 몽당 채이고 작은 북채는 쪼개져 고무줄로 동여맸어도 아이들은 마냥 흥겨워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지자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드디어 연구 수업 날이 되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서 1학년에서 6학년 선생님들이 오셔서 쭉 둘러앉았다.

처음에 각 파트별로 연습을 할 때에는 소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합주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제 흥에 빠져들어 갔다.

양 볼이 화끈거리는 것이 나도 어지간히 흥분이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나는 어느새 리듬 합주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연주를 했던지 뒤에 앉아있는 관객들을 잊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 이마엔 땀방울까지 송글거리고 있었다.

내 스스로 ‘만족한 수업’이면 성공적인 수업에 들어간다. 그날 수업은 아이들도 나도 대 만족한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수업을 한 것이었다.

반장의 구령으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수업이 끝났다.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덩달아 일어서 손뼉을 쳤다.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기립박수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신나는 수업은 난생 처음입니다. 학부모 모시고 다시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당장에 북채 수리부터 하고, 악기를 좀 더 구입하도록 합시다”

교장 선생님의 칭찬으로 아이들과 나는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정말 신나는 하루였다.

그 날 이후 내가 자주 쓰는 농담 한 마디!

“나 이래봬도 연구수업하고 전 선생님들에게 기립박수 받은 몸이야”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그 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 가보고 싶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10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10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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