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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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기>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한나 할아버지는 담임인 나만 보면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그 분은 갓 입학한 한나를 3월 한 달 내내 등하교를 시켜 주셨기 때문에 나와 자주 마주치곤 했다.

직장에 다니는 한나 엄마를 대신해 한나의 준비물도 곧잘 챙겨 주셨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정중하게 한다. 내가 정중하게 인사하면 학부모들도 따라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발의 한나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한나 할아버지만 눈에 띠면 그 분보다 더 깊게 고개를 숙이려고 마음의 자세를 갖추곤 했다.

마치 ‘왕과 나’의 율 부린너와 데보라 카가 서로 몸 낮추기 경쟁을 하는 것처럼. 한참 젊은 나에게 공손한 존경을 담아 행동하시기에 황송하기까지 했다. 나 또한 그 분 앞에만 서면 최대한 공경을 담아 언행에 각별히 신경을 쓰곤 했다.

2학기 중간쯤 되었을까?

하교 길에 한나 할아버지께 뛰어가 반갑게 인사하는 나이 드신 남 선생님이 있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그 선생님을 만났다.

“아까 그 할아버지 아시는 분이세요?”

“전에 모셨던 제가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이세요”

지금은 퇴직하셨다는 전직 교장선생님이신 그 분은 한참 후배인 나에게 그토록 극진하게 대해 주셨던 것이다.

언젠가 유난히 활발한 지원이 엄마가 학부모가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과 흉허물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어린 그녀를 볼 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담임의 의도를 눈치도 못 채고 동네 친구 대하듯 예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1학기 중반쯤엔 그녀도 나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우리 아이들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뵐 때마다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다른 엄마들은 멋있고 우아하게 행동하는데, 엄마는 우리 담임 선생님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쩔쩔매는 거예요? 엄마도 같은 선생님이면서”

큰 아이가 5학년 때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네 담임 선생님께 고맙고 존경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거야”

아들 녀석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아이들도 엄마처럼 담임 선생님을 공경하길 원했다.

무시하는 담임에게서는 배울 게 없기에.

그래서 나는 학부모들에게 최대한 겸손하고자 노력했다. 학부모 또한 그리하라고.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도 보고 배우라고.

<웅변 왕 미희-1>

섬진강 가에 있는 A초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운동장 바로 아래가 강가 모래밭이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강변 모래밭에 떨어지기도 했다.

12학급의 작은 시골학교인 그곳에서 나는 5학년을 맡았다.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 두 반이었다. 남자 반은 남자 선생님이, 여자 반은 내가 가르쳤다.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 사이엔 교실 벽 대신 육중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이 있었다. 강당이 없는 시골 학교인지라 그 문을 떼어내면 교실은 작은 강당이 되었다.

졸업식이나, 학교의 행사가 그곳에서 치러지곤 했다. 그 때마다 남자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무거운 문짝을 떼어내며 끙끙 대야했다.

문짝이 벽을 대신 했기에 옆 반의 소리가 다 들렸다. 옆 반이 음악을 하면 다른 반은 어김없이 체육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청소시간마다 먼지를 옆 반으로 슬그머니 쓸어 보내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옆 반 남학생들은 문 틈사이로 연애편지(?)를 끼워 넣기도 했다. 그냥 두어도 괜찮을 법하지만 교사들은 필적대조까지 해서 편지 쓴 남학생을 찾아 혼을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70년대인 그 시절에는, 그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남학생반과의 분쟁이 있을 때마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을 통쾌하게 물리치곤 했던 아이가 있었다. 우리 반 반장이었던 예쁘고 똘똘한 아이 미희였다. 그 애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반 아이들을 챙기곤 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0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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