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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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가 양지된다 1>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교실 환경정리에 온 정성을 쏟던 시절이었다. 그 때만 되면 등에 식은땀이 나곤했다.

언니들은 종갓집 종부인 어머니를 닮아 음식이면 음식, 바느질이면 바느질 그림이면 그림 등, 손으로 하는 모든 솜씨가 대단했다.

그러나 솜씨가 약에 쓰려 해도 없는 게 셋째인 나였다. 그런 내가 여러모로 솜씨가 필요한 교사가 되었으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0년대, 교사들은 교실 환경정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요일에도 나와 교실을 꾸미곤 했다. 지금은 컴퓨터가 할 일을 그 땐 모두 손으로 했다.

환경심사가 있는 날이 되면 전 직원이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각 교실을 돌곤 했다. 환경구성, 청소상태, 교실바닥 윤내기, 유리창관리, 화분관리 등등. 빼꼭한 점검표를 들고 점수를 주었다.

1,2,3등을 발표하고 작은 선물을 주는 뭐 그런 행사였다. 3월과 9월마다 그 행사는 반복되었다. 꼴찌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어쩜 우리 반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해 볼뿐이다.

그래서 3월과 9월은 환경정리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교대 강습 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실과 교육 시간에 철사로 석쇠를 만든 적이 있었다.

모두들 펜치를 이용해 잘도 만드는데 나는 도무지 만들 수가 없었다. 작품 만드는 과정을 둘러보시던 교수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자네는 멍청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어찌 그리 멍청하게 만드는가?”

결국 만들지 못해 남들이 버린 것을 주워 제출했던 아픈 일까지 함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환경정리에 쩔쩔 멘 건 당연했다. 그래서 청소에 더 신경을 쓰곤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합판을 오려 모형을 만들어 환경구성을 했다. 내 솜씨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걱정으로 동동거리며 열심을 내 봤지만 마음엔 전혀 들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도 바쁜 터라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환경정리가 한창인 3월 중순쯤 출장을 가게 되었다. 시간도 없는데 출장이라니? 불평을 하며 교실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출장 중에도 온통 내 마음은 교실에 가 있었다.

출장을 마친 오후 다시 학교로 향했다. 환경정리에 조금이라도 손을 봐야겠다 싶어서였다. 이미 퇴근 시각은 지나 있었지만 교실마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교실 앞에 선 나는 선뜻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자물쇠가 열려있는 것이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목공소처럼 어지럽혀진 곳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남자선생님 두 분이서 우리 교실 환경정리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 부장 선생님과 6학년 총각선생님이었다.

두 분은 친한 친구사이여서 솜씨 없는 우리 반을 도와주기로 하셨나보다. 내가 하다만 환경정리는 솜씨 좋은 두 분에 의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합판을 톱으로 자르고, 페인트칠을 하고 두 분은 이마에 땀까지 나 있었다. 나는 새롭고 멋지게 변한 환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일 후, 그 총각선생님이 멋져 보였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그 총각선생님이 지금의 남편이다.

그 후 강산이 두 번쯤 변한 90년대엔 환경정리가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 작품위주, 푸른 식물이 있는 환경으로.

그것이라면 솜씨 없는 나도 할 만한 일이었다.

솜씨가 필요했던 예전의 환경정리 상처를 씻어내듯 나는 나름의 교실 가꾸기에 정성을 다했다.

나중엔 다른 사람들이 구경 오는 교실로 변하기까지 했다. 식물 가꾸기의 자문을 구하러 오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유리창을 타고 올라가던 나팔꽃, 물가꾸기로 푸름을 자랑하던 식물들. 교실은 작은 식물원이 되어있었다.

솜씨 없는 내가 빛을 보게 되었다 할까?

지금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음지가 양지 될 날이 있을 것이기에.

데일리스포츠한국 0927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9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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