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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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상현이>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그날 이후로 그 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애의 무궁무진한 지식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다는 그 애의 지적 수준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자 그 때부터 상현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버릇도 고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가끔 상현이를 앞에 세워 발표를 시키다 보면 감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바다에 대한 공부를 하다 상현이에게 보충 설명을 하게 한 적이 있다. 심해 몇 미터에는 어떤 고기들이 살고 있고, 전기뱀장어는 몇 볼트의 전기를 내뿜는 다는 등의 내용을 컴퓨터에서 뽑아 낸 것처럼 설명하곤 했다. 몇 분의 발표시간마다 상현이는 신나 했었다.

일일이 그 애의 천재성을 적을 수는 없지만 어른들이 쓰는 경제 용어까지 섞어가며 이야기를 할 땐 엉덩이를 두드려 주다가도 ‘이 애가 정말 1학년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적 수준은 중고등학생을 뺨칠 정도로 놀라웠지만 친구끼리 어울리는 것을 보면 개구쟁이 1학년 그대로였다.

가을 소풍 때였다. 상현이가 귤을 몇 개 가져와서 1학년 선생님들께 나눠 드린 적이 있었다. 소풍 출발하기 전까지 그 귤을 왜 먹지 않느냐고 어떻게나 각반을 돌며 졸라대서 바쁜 중에도 귤을 까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보니 다른 친구들에겐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나는 중간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릴 수 있도록 힘썼지만 혼자 노는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곤 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영재교육을 권해 보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그냥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퇴직을 하며 후임 담임 선생님께 특수아 상현이를 부탁한다는 뜻을 전해 드렸다. 그러나 그 애는 2학년이 되어서 또다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한참동안 가슴이 아렸다.

머리가 좋아도 그 환경에서 적응 못하면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부디 그 애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놀라운 두뇌를 빛내기를 기도했다.

얼마 전 상현이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아들이 잘 자라서 S대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소식이었다.

나는 상현이의 장래를 기대하며 또 다른 소식을 기다려 보련다. 뛰어난 머리가 빛을 발해 기쁜 결과가 있다는, 또 다른 소식을 !

<엄마 닮은 마음> - 1

퇴근 시간이 가까운 오후였다. 재근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달려야 할 광주에 살고 있는 녀석이 웬일인가 싶었다.

재근이는 10년 전 3학년이었을 때에 가르쳤던 아이였다. 내가 시골에서 근무하다 읍 소재지 학교로 옮겨온 해였다. 시골 선생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 어느 해 보다 열심히 가르쳤던 기억이 났다.

재근이는 피부가 뽀얀데다가 얼굴도 여자 애처럼 예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공부도 무척 잘해서 똑 부러진 발표로 수업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예뻐해야 했음에도 유난히 정이 쏠리곤 했다.

지금쯤은 대학에 입학했을 재근이. 훌쩍 청년으로 자라있을 녀석이 보고 싶어 퇴근 시간이 기다려졌다. 퇴근을 하자마자 서둘러 버스 터미널 다방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졸업 후, 6년 만에 보는 재근이가 건장한 청년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재근이에게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녀석의 손안으로 내 손은 어린애처럼 쏙 들어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계산상으로는 대학생이 되어있을 시기였지만 행여나 싶어 말을 아꼈다. 그런데 재근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대학 떨어졌어요. 지금 재수 중인데 너무 힘이 들어요. 선생님이 보고 싶어 그냥 왔어요”

나는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재근이가 3학년 때 얼마나 똘똘했었는지, 수업분위기를 얼마나 향상 시켰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재벌 총수는 사위, 며느리를 볼 때 꼭 재수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고른다고 하더라. 재수 해본 사람은 남들이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얻는다면서 말이다. 아마 끈기와 용기, 그리고 인내심 같은 게 아닐까? 너에게 온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렴. 나는 너를 믿는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25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9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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