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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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에서 받은 촌지>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나는 살며시 다방 문을 열었다. 드문드문 앉아 있던 손님 중에서 남자 한 분이 벌떡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아들을 맡겨두고도 선생님께 변변히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들 녀석 교육을 잘 시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남자 선생님 같으면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지만 여 선생님이라 그저 이렇게 말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일부러 찾아왔다는 말씀에 기쁘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했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좁은 고을이라 경찰관 학부모와 여선생님의 만남을 사람들은 흥미롭게 쳐다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담임을 맡고 계실 때는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작은 선물이라도 내 자식 잘 봐 달라는 뇌물이 될까봐서요. 그러나 이제는 담임이 아니니 부담 없이 이렇게 찾아 뵐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 제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성의를 담았습니다. 부디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정중한 말씀과 함께 호헌이 아버지는 내게 하얀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대낮에 촌지라니, 그것도 다방에서. 나는 가슴이 쿵쿵 뛰고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뜻은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간곡히 권하는 호헌이 아빠의 뜻을 결국엔 꺾을 수가 없었다.

봉투를 들고 교문을 들어서는데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다리가 떨렸다. 호주머니 없는 원피스는 봉투가 숨을 곳도 없었다.

“저 사람 경찰 맞아?”

할 정도로 전혀 경찰답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문난 그분은 청렴결백한 분으로 알려진 분이셨다. 가정 형편도 넉넉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 봉투는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나는 그냥 쓰기엔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아 봉투를 옷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그렇게 봉투는 옷장 위에서 몇 달을 잠자게 되었다. 그러다 그 봉투를 꺼내어 그 시절에는 귀했던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사게 되었다.

그 후 15년 쯤 쓰고 새것으로 바꾸었지만 지금도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면 가끔 그 날이 생각나곤 한다.

똘똘하던 호헌이와 호헌이 아빠 모습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때가 있다.

<내가 받은 촌지들>

교직생활 하며 있었던 일들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자랑스러웠던 일도 있었지만 부끄러웠던 일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촌지에 관한 것은 두고 두고 후회가 되는 기억이다.

버스타고 가라며 신문지에 말아준 50원짜리 동전 세 개가 첫 촌지였다.

그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비가 150원쯤 되었다. 할머니가 손에 쥐어 준 그 동전을 오래오래 간직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음엔 100원 동전 두 개가 두 번째였다. 소풍을 다녀 온 뒤 학생이 내민 딱지가 있었다. 공책을 찢어 만든 딱지였다.

펼쳐보니 만 원짜리 종이돈이 함께 말려있었다. 목욕하라는 메모와 함께.

그렇게 시작된 촌지. 너도 받고 나도 받는 관행이라고 애써 부끄러움을 달랬던 시절이었다.

되돌려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같은 학교 교사들 자녀들의 통장에 촌지 액수를 입금시켜 주곤 했는데. 모두를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받았던 촌지들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흔적 없이 사라져간 촌지들은 내게 부끄러운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어느 날 욱이 엄마가 촌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갔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어디에 쓴지도 모르게 사라졌던 그 봉투!

학년말 욱이 엄마의 말에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에 쓰러질 것 같았다.

“선생님만은 그런 것 안 받으실 줄 알았는데”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부끄러워하며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며 보냈다. 그 뒤부터 나는 촌지를 받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 좋았다.

“저 촌지 하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학부모들은 더 이상 촌지를 내밀지 않았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내 교직 생활의 흑 역사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09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90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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