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7.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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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찬 아이들>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나는 상혁이를 교탁 앞으로 불러내었다. 정아 아빠는 평소 성진이도 정아를 괴롭혔다며 함께 불러내었다.

아이들은 무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오히려 신나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냥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TV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수갑이 두 아이들 손목에 철컥 채워지는 게 아닌가?

경찰관인 정아 아빠는 범인들에게나 사용하는 진짜 수갑을 1학년 아이들의 손목에 채운 것이다. 그건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아이들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재미있다고 구경하며 떠들고 있던 반 아이들도 그 순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정아만이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띠고 의기양양하게 앉아있었다.

피가 머리끝까지 솟는 걸 느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수업시간에, 그것도 현직 경찰이 교사와 아이들 앞에서 수갑을 채운 일을 앞에 두고.

수갑을 채워 놓은 채 아이들을 꾸짖던 정아아빠는 잠시 후 수갑을 풀어주고 실례했다며 교실 문을 나섰다.

“잠깐만요”

나는 떠드는 아이들에게 소리 질러 책상에 엎드리게 하고는 복도로 뛰어 나갔다.

“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저에겐 정아아빠 또래의 동생이 있습니다. 교사라기보다는 인생 선배로서 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정아아빠를 세워두고 말을 이어 나갔다.

“자유당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단한 권력을 가진 장관이 있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장관 앞에선 설설 기기 때문에 초등학교 다니는 그 아들 버릇이 말이 아니었대요. 자기 아빠만 최고라고 믿고 다른 사람은 무시하는 그 아이 버릇을 고칠 방도가 없었답니다. 고민하던 장관은 담임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를 했대요. 그리고 선생님이 오시자 맨발로 뛰어나가 머리가 땅에 닿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대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본 아이는 담임 선생님을 다시 보게 되었대요. 아빠가 꼼짝 못하는 담임 선생님이 아빠보다 더 위대해 보인 거지요. 그 후 그 아이는 모범생이 되었고 그 다음은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정아의 아빠는 가만히 서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평소에 말이 빠른 편인 내 말은 흥분해서 더 빨라지고 있었다.

“예화를 하나 더 들려드리지요. 수업시간에 야생화 이름을 질문한 어린이가 있었는데 교사는 그 이름을 몰랐대요. 마침 그 반에 대학교수의 딸이 있었고 그 교수는 식물학 박사였답니다. 교사는 그 아이에게 야생화 이름을 알아오라고 했답니다. 박사 아빠는 딸에게 잘 모르겠다며 내일 담임 선생님께 다시 여쭈어 보라고 했대요. 그리고 박사는 그날 밤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했대요. 그리고 야생화 이름을 알려드리며 선생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라고 했답니다. 이튿날 대학교수인 아빠도 모른다던 식물 이름을 담임 선생님께 들은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 정아아빠를 보고 정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인 나를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요?”

현직 경찰관이 교실에서 그것도 수업시간에 수갑을 채운, 교권 침해에 대해서 나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떨면서도 열변을 토하는 나를 보더니 정아아빠는 그제야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는 것 같았다.

정아아빠는 서둘러 교실로 들어가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 말 잘 들으라며 이야기 속의 장관처럼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나갔다.

나는 그 순간 긴장이 풀려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 했다.

넋 나간 모습의 내게 교실 밖 상황을 지켜보았던 옆 반 선생님이 다가왔다. 나는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위로하는 그 선생님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땅에 굴러 짓밟힐 뻔 한교권이 정아아빠의 고개 숙인 사과로 조금은 보상되었을까?

그때 만약 내가 흥분과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경찰관의 옷을 벗길 만큼 큰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았을까?

그 후 정아아빠는 단 한 번도 학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래도 힘들었던 그 시절이 가끔씩 그리워지는 건 무슨 일일까?

데일리스포츠한국 0729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7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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