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7.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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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투표>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학생들에게도 ‘기권하면 안 된다. 그러면 나중에 할 말이 없는 거다. 누가 뭐래도 소신 있게 투표해야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학부모가 아닌 나에게 있었다. 유권자로서의 고민이 생겼던 거다.

그 무렵 떠도는 소문이 무성했다.

‘기표소의 포장이 너무 짧아, 어디에 찍는지 다 보인다. 찬성인 왼쪽에 찍는지, 반대인 오른쪽에 찍는지 다 알 수 있다.

공무원들은 마땅히 찬성표를 던져야한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뒤에서 다 감시한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점점 더 무성해졌다. 무성해지는 소문과 함께 내 고민도 커져만 갔다.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한 기권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해’

나중에는 밥맛까지 떨어져갔다.

‘내가 두 번째 투표만 되어도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겠다. 첫 투표잖아? 내 생애 첫 투표!’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 고민을 말할 수도 없었다. 찬성에 투표를 한다는 것은 곧 유신 헌법을 찬성한다는 뜻이었다.

학생들에게 소신 있는 투표를 하라고 가르쳤던 내가 아닌가?

나는 죽어도 찬성에는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풀이 죽어있는 나를 보고 이 선생님이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요?”

평소에 둘 다 책을 좋아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 터지만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냥요”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드디어 투표일이 다음 날로 다가왔다.

점심을 마친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모였다. 다음날 투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서도 기표소 포장이 짧을 거라고 했다.

“저는 첫 투표라 가슴이 떨려요”

내 말에 이 선생님이 싱긋 웃었다.

“첫 투표인데, 소신껏 찍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가요?”

“다 보인다잖아요?”

이 선생님이 크게 웃었다.

“바꾸어요”

“뭘요?”

“투표용지요”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어-어떻게요?”

이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 종이에 X와○를 그렸다.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투표소로 들어가며 몰래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반대가 왼쪽, 찬성이 오른쪽으로 가게 거꾸로 든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이 선생님은 종이를 180 도로 돌렸다. X와○는 그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이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했다. 그날 밤 나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씩씩하게 투표장소로 걸어갔다. 물론 그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투표용지를 돌렸다. 나는 손에 힘을 주어 내 소신껏 ‘꽝’ 찍어 한 표를 행사했다.

가슴이 후련했다. 지금도 그 선생님이 참 고맙다.

그 때 찬성률이 90%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날, 투표소 포장이 진짜로 짧았을까? 짧아서 책상과 같은 높이의 길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난 투표용지를 반대로 돌리느라고 떨고 있었으니까.

<수갑 찬 아이들> - 1

“똑똑”

수업시간 중, 노크 소리에 교실 문을 열었다.

“정아 아빠입니다”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어제 개구쟁이 상혁이가 정아의 손등에 면도칼로 상처를 냈기 때문이었다.

실금이 붉게 그어진 상처였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칼을 몸에 대었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무척이나 놀랐던 일이었다.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3교시 중간쯤 된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낯선 손님의 등장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난 당황해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정아 아빠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정아 아빠는 직접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726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7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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