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7.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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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를 떼러 왔소> - 4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상준이 아버지, 제 아이도 읍에 있는 중앙초등학교 1학년 3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상준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모른 척 덮어두는 담임 선생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더도 덜도 말고 꼭 저 같이만 대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때린 것은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절대로 상준이를 포기 할 수 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던 상준이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아빠한테 거짓말했냐? 어! 네 말하고는 다르잖아?”

그리곤 상준이를 노려보며 팔을 나꿔챘다.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상준이 아버지에게 인사도 못하고 나는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순순히 돌아갈 줄은 몰랐네”

옆에 있던 교장선생님은 크게 숨을 한번 내쉬더니 교장실 문을 살며시 닫아주고 나가셨다. 나는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계속 상준이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는 꿈을 밤새 꾸었다.

이튿날 상준이 아버지는 말끔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어제는 상준이 말만 듣고 제가 너무 흥분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우리 상준이 많이 때려주세요. 선생님께 상준이를 맡기겠습니다”

2층까지 올라온 상준이 아버지는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다.

“너희들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여. 너희들이 선생님 속 썩이면 내가 가만 안 둘껴!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너희들 잘 알제?”

떠나는 상준이 아버지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새삼스레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후 교장선생님께서 자주 쓰시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서 선생만큼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봤어. 나는 무릎이 달달 떨리는데 체구는 저렇게 작은 사람이 다부지게 말 하드라고. 정말 놀랐다니까. 하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서 선생 모가지 잘릴 뻔했어”

그 후로 나는 PVC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떠한 일에도 감정적인 매 또한 들지 않았다.

체벌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봄날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다. 상준이에게도 미안하지만 공포의 현장에 있었던 40 여명의 반 아이들이게도 미안하다. 그 애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상준아, 애들아, 정말 미안했다. 용서해줘.

<나의 첫 투표> - 1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집 앞 학교를 찾았다. 먼저 투표한 사람들은 투표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신이 찍은 후보를 알리는 손가락표시까지 하고 있었다.

‘세상 좋아졌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이 나왔다.

내 첫 투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무시무시한 시절이었다. 유신헌법의 찬, 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우리 교사들은 학부모들을 찾아 투표홍보 출장을 나가야 했다. 출장은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한 뒤, 밤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학부모들을 만날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대신 밤 출장을 나간 것이다. 마을 회관에 모인 학부모를 상대로 절대로 기권하지 말라고 홍보를 했다. 학부모들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고된 일을 하고 잠을 자야하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나오니 울며 겨자 먹기로 모였을 것이다.

홍보를 하다보면 밤중이 다 되어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차가 끊긴 먼 길을 걸어서 학교로 돌아왔다. 그 때는 직원 중 그 누구도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다. 읍에 있는 택시를 부를 여건도 되지 않았다.

걸어서 학교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다 되어있었다. 남교사들은 숙직실에서, 여교사들은 동료 교사의 방에서 모여 잠을 잤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725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7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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