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7.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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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를 떼러 왔소> - 3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상준이는 언제부터인가 친구들 물건에 손을 대고 있었다. 담임을 무시하듯 규칙을 어기는 횟수가 늘어났다.

나는 반 아이들 앞에서 상준이와 약속을 했다.

“상준이 네 잘못을 두 번 까지는 용서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무서운 벌을 받을 각오를 해라”

험한 표정으로 엄포까지 놓았다.

그러나 얼마 후, 두 번째의 도벽 사건이 생겼다.

이웃돕기 성금으로 걷어 놓은 돈을 가져간 것이었다. 상준이가 가져간 것을 보았다는 아이들 말을 듣고 사실대로 고백하라고 타일렀다.

그 아이는 무거운 배를 안고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나를 데리고 돈을 찾는다며 담벼락 구멍 속, 돌 밑을 뒤지며 운동장, 앞뜰, 뒤뜰을 헤매기 시작했다.

“여기다 둔 것 같은데…”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돌았다.

나는 밑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부른 배를 두 손으로 받치고 걸었다. 절대로 중간에 상준이를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결국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상준이는 이제껏 신고 다녔던 신발 속에서 천 원짜리 지폐들을 꺼내 놓았다.

나는 다리를 뻗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한번 남았다고 상준이에게 강조를 했다. 아이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두고 보자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발 상준이가 약속을 지켜 주었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약속을 어길 시에 두려운 건 상준이가 아닌 내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불안한 내 예감대로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반 아이 영아가 그 시절엔 귀하디귀한 일제 샤프를 잃어버린 것이다. 영아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찾고 찾다보니 샤프는 상준이의 호주머니 속에 나를 비웃듯 숨어있었다.

앞이 캄캄했다. 반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실수는 두 번까지로 충분하다. 세 번째부터는 실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용서할 수 없다”

반 아이들 앞에서 상준이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가 된 것이다.

가슴은 벌렁거리고 손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어린애에게 어른인 내가 KO패를 당한 느낌이었다.

버릇을 고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상준이에게 벌을 주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미련하게도 체벌을 택했다.

상준이를 엎드려뻗치게 했다. 평소에 체벌을 잘 하지 않아 교실에는 마땅한 매가 없었다.

그런데 언뜻 눈에 띄는 게 있었다. PVC막대였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것을 집어 엎드린 상준이 엉덩이를 향해 힘껏 내리 치기 시작했다.

상준이 엉덩이는 그 막대 세례를 얼마나 받았을까? 내 기운이 다 할 때까지 매질을 해댔던 것이다. 교육적인 체벌은 내 머리 속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상준이에 대한, 혹은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나는 내 분을 못 이기고 날뛰었을 것이다. 아니, 그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광기어린 매질 바로 그것이었다.

43Kg의 내가 4Kg의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을 때였다. 출산 예정일을 20일쯤 남겨 놓은 때였으니 태아에게 위험할 수도 있었겠다고 이 글을 쓰는 이제야 생각해 본다.

내가 기진 한 뒤에야 매를 놓았을 것이다. 약하게만 보였던 담임의 무서움을 보고 아이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매를 내던지고 그제야 나는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었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자괴감에 차라리 교단을 떠나고 싶어졌다.

워낙 무섭게 날뛰는 내 앞에서 상준이는 잘못했다며 다시는 선생님 속상하는 일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서성자 동화작가
서성자 동화작가
데일리스포츠한국 07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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