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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김용균없는 김용균법’과 일상의 민주주의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19.06.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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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제2, 제3의 용균이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OECD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벗어던져 주십시오.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주십시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호소이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6.10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에서 무대에 오른 김씨는 헌법 제34조를 소리높여 낭독했다.

기념식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세워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렸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국가폭력과 숭고한 희생이 있었던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석자들이 달랐다. ‘미투’ 선언을 이끈 서지현검사와 대한항공의 ‘갑질’을 고발한 박창진씨가 사회를 맡았다. 김미숙씨 등 소외와 차별, 불안정 노동 등에 맞서온 이들이 나섰다. 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와 안전한 일터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87년 체제’를 이뤄낸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일상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자는 선언이었다.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김용균씨가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김씨의 유품에는 고장난 손전등과 건전지, 허름한 작업복 등이 들어 있었다. 그의 유품에도 늘 끼고 살던 컵라면도 들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씨는 탄가루 때문에 코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작업장에서 헤드랜턴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일해야 했다. 유품 중 하나인 손전등은 김씨가 사비를 들여서 산 것이었다.

3년전 서울 구의역에서 안전문 공사를 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김군. 그가 남긴 가방에도 컵라면과 삼각김밥, 공구가 들어 있었다. 왜 이들의 유품에는 유독 컵라면이 들어 있었던 걸까. 밥 먹을 시간조차 내기 어려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일하던 청년들의 고통을 말해준다. 힘없고 가난한 자, 힘든 삶을 이어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들의 죽음은 ‘효율’에 밀린 안전과 노동의 가치, 사람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했다. 우리사회에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 사회안전망과 잃어버린 공동체를 구축하라고 일깨웠다. 이들은 ‘죽음의 외주화’를 없애달라고 소리없이 절규했다.

특성화고 졸업생인 김태규씨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다. 김씨는 수원의 한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에 내몰렸다. 그는 지난 4월10일 5층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숨졌다. 엘리베이터는 사람의 탑승이 금지돼 있었다. 규정과 달리 건물 바깥을 향해 문이 열린 상태로 작동했다. 게다가 고층작업에 필요한 안전대와 안전망은 없었다. 회사는 안전모와 안전화, 안전벨트도 지급하지 않았다.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실족사로 단정했다.

이들은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청년들이다. 이들의 꿈은 온데간데 없고, 유가족은 평생을 아파하며 죽을 때까지 깊은 한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 생명따윈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자본이 청년들을 죽였고, 정치인들이 합세해 죽였고, 방관한 정부기관들이 죽인 셈이다. ‘효율’이란 구호에 밀린 채 생명과 안전이 사라진 노동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구의역사고 이후 비정규직 청년들의 죽음은 이어졌다. 김용균씨 사망이후에만 50여명의 청년들이 죽음에 내몰렸다. 급기야 김용균씨가 숨진 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28년만에 산업안전법이 전면 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지난해 12월27일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다. 더이상 청년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법안통과를 이끌었다. 4달 뒤 정부는 시행령을 내놨으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해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더구나 김용균씨가 하던 업무는 제외돼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개정된 산업안전법에는 위험한 작업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하청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시행령에 예외를 두도록 규정했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에는 황산, 불산 등 4개 화학물질과 관련된 작업에 대해서만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도록 명시돼 있다. 원청의 안전책임을 강화한 건설기계도 타워크레인과 건설용 리프트 등 4개로 한정했다. 정작 굴착기 등 사고가 잦은 장비는 빠져 있다. 발전소, 시설관리 등 수많은 유해 위험업무는 여전히 도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게다가 노동자의 업무상 안전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업에 대한 처벌수위도 매우 약하다. 따라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다치게 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핵심제도 개선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대상이 매우 협소하게 한정됐을 뿐더러 작업을 중지하고 노동자를 대피시켜야 할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을 사업주에 맡겼다. 노동자들을 여전히 위험한 작업환경에 방치하도록 한 것이다.

‘일하는 2030’ 박승하 대표는 사업주의 미흡한 안전관리 의식을 꼬집었다. “사업주가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설비나 제도에 대한 노력을 했을 때 드는 비용과 과실로 인해 노동자가 죽었을 때 죽음을 해결하는 비용, 이중 무엇이 싼가?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죽는 편을 택하고 있다.” 어찌 사람의 생명을 돈과 비교할 수 있을까. 비용편익을 위해 노동자의 죽음을 택하는, 효율을 위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촌철살인이다.

그렇다면 왜 힘없고 돈없고 줄없는 청년들만 세상을 떠나야 하는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위험에 내몰려 조금이라도 다치는 일이 이어졌다면 한국사회는 진즉에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막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국회는 앞 다퉈 법을 제정하고 정부의 무능을 호통치는 데 앞장섰을 것이다.

이 때문인가. 작업현장에서 아까운 삶을 마감한 청년들의 유가족이 뭉쳤다. 조직 이름은 ‘다시는’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울하게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첫번째 목표는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의 제정이다. 중대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강한 제재를 가해서 국민 누구라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산업현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염원 때문이다.

“왜 힘없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방관하고 당연시하는 나라가 있나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왜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지 국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 이후 ‘김용균법’ 제정에 동분서주했던 어머니 김미숙씨의 절규가 가슴에 와닿는다. 문재인대통령도 기념사에서 “이제 민주주의의 씨앗은 집에, 공장에, 회사에 심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자본의 효율에 밀린 안전과 노동의 가치,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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