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원 칼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지재원 칼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 기자명 지재원 기자
  • 입력 2019.05.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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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 경남 합천군 우체국에 주소없는 흰봉투가 배달됐다. “개인적인 이익보다 어려운 주위 분들을 한번쯤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이 익명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부터 이번까지 총 9차례, 530만5천원을 보내왔다.

5월16일, 강원 속초시 청호동주민센터 앞에는 10kg들이 쌀 10포대가 배달되었다. 이 역시 200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쌀 2포대 분량이 익명으로 기부되고 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 대구 달서구 본리동 행정복지센터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기술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봉리동에 살다 타지역으로 이사가셨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며 “덕분에 돈도 많이 벌고 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본리동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좋은 일에 써달라”고 3천만원을 기부했다. 50대로 추정되는 이 기부자는 끝끝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떠났다.

5월9일, 경북 포항 한동대에서 ‘코너스홀’ 준공식이 열렸다. 30억원을 쾌척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건설됐는데, 70대 여성으로만 알려진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지인의 자녀가 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거금을 쾌척했다고 한다.

좋은 일을 하면 널리 알리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엔 좋은 일을 하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 익명성을 아예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팩트체커(사실 검증 전문가)로 활동한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팩트 체커는 기자들의 기사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사람들이다. 학력수준도 높고 다방면의 지식도 풍부하다. 그러나 기사엔 기자 이름만 있기에 독자들은 팩트체커의 존재를 모른다. 언론의 권위와 명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독자들에겐 투명인간”이라면서 그들을 ‘인비저블(Invisibles)’이라고 했다.

팩트체커뿐 아니라 녹음기사, 촬영기사, 길안내 시스템 설계자, 동시통역사, 초고층빌딩 구조공학자 등 드러나진 않지만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뒤 그것을 <인비저블>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인비저블’을 ‘남들의 관심이나 칭찬이 아닌, 일 자체에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21세기의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어하며, 각종 SNS와 모바일 앱 등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이른바 ‘마이크로 유명인(micro-celebrity)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브랜드화’에 가장 앞장선 이들은 프로 스포츠선수들이다. 선수 각자가 브랜드이며 회사이기 때문. 그런데 프로 스포츠선수들이 유니폼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60년대에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처음으로 유니폼 등에 선수 이름을 새겼는데, 그 이전까지는 유니폼에 ‘선수 이름 없음(No Name on Back, NNOB)’이 불문율이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수 이름 넣기(Name on Back, NOB)’는 곧이어 미국풋볼리그에 전파됐고 10년쯤 지나자 메이저리그 거의 전구단에서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넣었다. 물론 지금도 뉴욕 양키스는 NNOB 유니폼을 갖고 있으며, 보스턴 레드삭스는 홈팀 유니폼으로 NNOB 유니폼을 사용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00년에 홈팀 유니폼으로 NNOB를 도입한 후 두번이나 우승했다. 당시 구단주였던 피터 매고완은 “과거의 유서깊은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팀의 역사와 전통을 홍보하고 부분적으로는 자이언츠를 선수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홍보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2011년 유니세프 공식후원 구단이 되면서 매월 유니세프 데이(마지막주 목요일)에 국내 프로팀 최초로 NNOB 유니폼을 입었다. SK 와이번스도 2015년부터 매주 일요일 홈경기 때 NNOB 유니폼을 선보여 개인보다 팀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독일어권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로베르트 발저가 있다. 그와 동시대 인물인 헤르만 헤세가 “발저의 독자가 1만명만 되면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극찬했던 그는 생전에 1천여편, 미발표 유고로 5백여편 등의 산문과 소설을 남겼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로베르트 발저’는 낯설다. 국내에도 최근에야 그의 작품들이 소개됐을 정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평생 주거지가 80군데가 넘었을 만큼 불안정한 생활을 한 발저는 51세에 정신병원에 들어가 세상과 등진 채 ‘은둔의 삶’을 살다가 78세에 산책 길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은둔자’의 경지를 넘어, 세상의 가치에 역행하는 역발상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장편 <벤야멘타의 하인학교>도 그 대표적인 예다.

제발로 찾아간 학교에 대해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게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가 하면 자신들을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작은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단지 작고, 가난하고, 종속된, 끊임없는 복종의 의무를 진 난쟁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 독문과 임형배교수는 “발저는 무거운 내용도 진지하게 다루기보다는 너스레를 떨며 의표를 찌르는 방식으로 얘기한다. 그런 점에서 발저의 산문은 더깊은 성찰과 공감을 유도하는 아이러니와 유머가 돋보인다”고 평가한다.

자기홍보 시대에 익명으로 사는 것도 이채로운데, 발저는 1천5백여 작품을 통해 세상의 가치체계를 역발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익명의 삶’보다 한단계 더 나아간 그의 작품세계가, 신기하게도 사후 60년이 지난 최근 우리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본사 전무>

'모든 작가들 중 가장 깊이 은둔했던 작가'로 꼽히는 로베르트 발저. 1956년 크리스마스에 산책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그를 어린아이들이 발견하고, 경찰이 촬영한 마지막 모습.
'모든 작가들 중 가장 깊이 은둔했던 작가'로 꼽히는 로베르트 발저. 1956년 크리스마스에 산책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그를 어린아이들이 발견하고, 경찰이 촬영한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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