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남효온의 사회 문제적 귀신론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남효온의 사회 문제적 귀신론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4.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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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남효온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그는 ‘우리 추강(秋江)’이라고 불리며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482년 그는 29세에 산문형식의 귀신론을 시작해 31세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조선의 성리학적 귀신론을 완성했고, 또 성리학적인 치도(治道)를 갖고 당시 조선의 왕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성종의 구원교(求言敎)에 따른 상소를 올렸으나 그의 상소문은 수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정으로부터 비난만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초야에 묻혀 평생을 술과 시에 묻혀 살다가 39세로 요절했다.

김종철의 논문인 <남효온 귀신론의 문체 특성>에 의하면, 그는 전 생애동안 전원에 은거하여 폐병과 풍과 같은 질병으로 평생 불우한 환경과 궁핍한 생활을 지속했다. 여행과 방랑을 즐기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죽음을 자주 경험하며 절실하게 다가온 죽음이라는 문제에 깊이 천착했던 것 같다.

그는 귀신론에서 죽은 조상과 후손이 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감응한다는 성리학의 ‘동기감응’의 논리를 수용했고, 당시 유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유교의 제사감격설(祭祀感格說: 조상께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의 기복적인 정서도 함께 반영했다.

김혁배는 <조선시대 유학자의 귀신론 연구>라는 논문에서 그의 귀신론이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민중들의 고통과 민심을 잠재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고, 또 “조선시대 귀신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회적인 병폐로 드러나는 귀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귀신론의 문장 첫머리에 당시의 귀신상을 반영해 “귀신은 천지간에 아득하고 황홀하여 있으면서도 없는 듯하며 실하면서도 허한 듯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으며 여기를 가리키면 저기에 있으니, 그대는 한 번 나를 위해 밝혀보도록 하라”며 서두를 시작해 “귀신의 이치가 워낙 깊어서 공자께서도 말하지 않은 것이라 자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요, 정자, 주자가 겨우 말한 것인데, 나같이 천박한 미학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이어 그는 귀신을 정의하며, “귀신은 만 가지로 흩어지는 가운데 하나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귀신론에 나오는 글이다.

저 일원(一元)의 기운이 흩어져서 만물의 표면에 펼쳐진 것을 말하자면 귀신은 일본(一本)의 만수(萬殊)이고, 모여서 치일(至一)한 이치로 요약된 것을 말하자면 귀신은 만주의 일본인 것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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