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 가면을 쓰고 원한과 분노를 표하다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 가면을 쓰고 원한과 분노를 표하다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3.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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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권혜경(외)이 쓴 <처용무 연구>라는 논문에 의하면 처용무는 “고려와 조선 전기를 거치면서 주술성으로 인해 나례(역귀를 쫓는 의례)의 주요 종목으로 정착되면서, 조선시대 내내 연말에는 처용무를 구경하는 것이 하나의 궁중 풍속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천연두신을 쫓기 위해 추었던 처용무는 구나와 양재축귀를 위해 연행되었고, 한국의 샤머니즘에서는 아직도 경면주사로 처용 형상의 부적을 그려 사기를 쫓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궁중과 외부공간에서 행해진 왕의 위락활동은 연회형, 강무형, 유희형으로 분류되는데, 유희형으로 나례(가면놀이), 처용무가 있다.
왜 연산군은 많은 위락활동 중에서 유독 처용무에 심취했을까? 처용무가 양재축귀를 위해 가면을 쓰고 연행한 궁중의례이고, 그가 방상씨 가면 뒤에 자신의 진짜 표정을 숨기고, 또 다른 페르소나(Persona)로 평소에 억제하고 있던 원한과 분노 같은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1505년) 4월 7일 임술 1번째 기사
“왕이 술에 취하면 기꺼이 처용의를 입고서 처용무를 추며, 또한 스스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처용의를 운평에게 입혀 창덕궁에 들이고, 술에 취하면 처용무도 추며 노래도 하다)
연산군일기 60권, 연산 11년(1505년) 10월 9일 경신 3번째 기사
“소혜 왕후가 늘 왕의 행동이 무도(無道)함을 근심하니, 왕이 하루는 얼굴에 처용 탈을 쓰고 처용의 옷차림으로 칼을 휘두르고 처용무를 추면서 앞으로 갔다. 그러자 소혜 왕후는 크게 놀랐는데, 그 후 왕후가 병들어 앓게 되니 왕은 미리 상기를 짧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승하에 이르러서도 슬퍼하는 빛도 없었으며, 상례·장례 등 모든 일을 또한 모두 강쇄해서 행하였다”
(경릉의 수릉관은 천담복으로 출입하면서 제사지내게 하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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