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이 왜이리 되었는가?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이 왜이리 되었는가?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3.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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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 대한 해묵은 분노 표출로 보여

[데일리스포츠한국] 연산군은 1503년 6월 13일 정업원에 난입해 음행을 감행했고, 재위 기간 내내 ‘흥청망청’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는 왜 왕의 체통을 망각하고 이 같은 패륜 행위를 저질렀을까? 정업원은몰락한 왕실 여성들의 의지처이자 수행의 도량 역할을 했는데, 자신의 생모를 폐위한 장본인이라 추정되는 세 명의 왕실 어른을 향한 해묵은 분노를 여승들에게 투사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단편적인 사관의 기록만을 토대로 연산군이 폭군이 되는 과정과 그가 음행을 저지른 직접적인 동기를 재구성해서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러 정황적인 증거와 사료를 통해 그가 생모인 폐비 윤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분노와 원한을 삭이며 살아왔고, 생모의 죽음에 부왕 성종과 세 명의 대비가 연관되었을 거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캐내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추론할 수가 있다.

이선형은 <‘왕의 남자’에 나타난 연극의 치료적 기능 연구>에서 대상관계이론을 적용해 “어린 연산군에게 커다란 외상과 애정결핍이 생겨났고 그 결과 성인이 되어 왕좌에 올랐을 때 비합리적 정서와 충동적 성격으로 이어져 비윤리적이고 파행적인 행동이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업원은 조선 초기 부터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어 유학자 및 관료의 반대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세조와 문정왕후에 의해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는 정업원의 주지는 총 7명으로, 혜화궁주 이씨, 소도군 부인 심씨, 정안왕후 언니 김씨, 비구니 해민, 유자환 부인 윤씨, 수춘군 부인정씨, 연산군 후궁 숙의 곽씨 등이다.

이들은 조선 전기에 생존했던 인물들로, 비구니 해민을 제외하면 모두 왕실과 친인척 관계인 여성들이었다. 또한 해민과 정안왕후 언니 김씨, 유자환 부인 외의 나머지 4명은 모두 남편이 정적에 의해 살해되거나 시가, 친정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 승려들이 대부분이었다.

(탁효정, 조선 전기 정업원의 성격과 역대 주지 - 조선시대 정업원의 운영실태)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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