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과 관련된 샤머니즘

연산군과 관련된 샤머니즘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3.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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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와 성종의 원자 연산군

[데일리스포츠한국] 조선왕조 500년 사에서 반정으로 축출된 임금은 연산군과 광해군 둘 뿐이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에 두 왕은 왕자의 군호로 쓰여 있고, 그들의 기록은 ‘실록’이 아닌 ‘일기’로 되어 있다.

연산군(燕山君: 1494-1506)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재위 시 생모인 폐비 윤씨의신원(伸寃)과 복위를 꾀했다. 왕의 신분인 그는 궁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면서 자신이 ‘무감(무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을 서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샤머니즘을 신봉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연산군은 성종이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끝내고 친정을 시작했던 성종 7년(1476년) 11월 7일 원자(元子)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인 윤씨는 관봉상시사 윤기견의 딸인데 숙의 신분에 성종의 총애를 받아 중전에 올라 8개월 만에 그를 나았고, 그의 이름은 융이다.

윤씨는 후궁일 때는 성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연산군을 나은 후 성종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성종의 후궁들을 투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후궁들을 저주하고자 굿하는 방법을 적은 책과 비상을 몰래 숨겨놓았다가 발각되어 성종의 분노를 샀다.

성종실록 78권, 성종 8년 3월 29일 병신 1번째 기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달 20일에 권숙의의 집에 언문을 던지는 자가 있었는데, 주워 보니 정소용과 엄숙의가 서로 통신하여 중궁과 원자를 해치려고 한 것이다. (중략)

주상이 중궁에서 보니 종이로써 쥐구멍을 막아 놓았는데, 쥐가 나가자 종이가 보였고, 또 중궁의 침소에서 작은 상자가 있는 것을 보고 열어 보려고 하자 중궁이 숨겼는데, 열어 보았더니 작은 주머니에 비상이 들어 있고, 또 굿하는 방법의 서책이 있었다” (대왕 대비의 명으로 중궁을 폐하는 문제를 논하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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