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등대의 항일운동사

3.1운동 100주년, 등대의 항일운동사

  • 기자명 석영국 기자
  • 입력 2019.02.28 10:30
  • 수정 2019.03.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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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석영국 기자] 110년 전 남해안 서단에 위치하는 절해고도 당사도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야욕으로 건립한 당사도 등대에 근무하는 일본인을 상대로 항일운동을 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기상과 독도에 등대가 건립되어 우리나라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고유 영토의 분쟁의 야욕을 없애기 위하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등대의 항일 운동사를 뒤돌아보고자 한다.

당사도 옛 등대와현재 등대
당사도 옛 등대와현재 등대

1894년2월15일 보국안민과 폐정개혁을 기치로 내건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여 농민들의 세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은 간단하게“반봉건적, 반외세적 농민항쟁”이다. 농민이 주축이 되는 운동으로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 시대의 최대의 항쟁이다.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결국 실패했으나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1894년 가을에 이르러 동학 농민군은 항일의병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그해 가을의 동학 봉기는 일본군을 쫓아낼 목적으로 궐기한 구한말 최초의 본격적인 항일 의병운동이었다. 부패한 집권층 타도를 목적으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항일 의병전쟁, 독립운동적인 성격으로 변모했으며 이후 1910년 8월10일“한국병합늑약”시까지 고부군, 완도군 등에서 가장 활발하게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했다.

완도항에서 30Km 떨어진 당사도에 1909년 1월20일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야욕으로 등대가 건립되고 일본인 등대원 4명이 배치 근무하게 되었다. 완도군 소안도의 뜻있는 유림들은 절해고도에까지 일본인이 들어와 조선을 침략하는 것을 볼 수 없어 1909년 2월 24일 새벽3시를 기하여 등대를 습격했다.

일본인 등대원들은 총으로 대응하며 버티었으나 의병들은 등대장을 사살하고 등대원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조선 땅에는 어느 한곳이라도 일본인은 발을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소안도 출신 이준화 등 세 사람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청산도로 끌려가 생을 마쳤다. 민족의 아픔이 깃든 그 등대 당사도 등대. 이것이 소안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당시 등대는 서구식 문명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곳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강압에 못 이겨 우리나라 예산으로 등대를 건설하고 등대 관리는 일본인이 등대원으로 배치 근무했으며 이로 인해 전국 연안의 다른 등대에서도 지역주민들과 마찰이 발생했다.

독도등대
독도등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은 아직도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생트집을 잡고 있다. 1952년 1월18일 국무원공고 제14호“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 즉 이승만 라인은 독도를 라인 안쪽에 포함시키고 1953년 어업자원보호를 위하여 외국선박의 불법어로행위를 엄격히 단속해 왔다.

1954년 초 일본의 참의원 의원 수명이 독도에 들어가 일장기를 그려놓은 사건이 발생하자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긴급 본회의를 소집하고 독도에 조사단을 파견키로 의결하고 국회의원 3인을 대표로 선출하여 부산항에서 독도까지 경비정으로 22시간 항해 끝에 독도에 상륙했다. 독도의 바위마다 일장기를 그려놓은 것을 검은 페인트로 지우고 태극기로 고쳐 그리고 “독도 단기 4287년 7월25일 대한민국 민의원 시찰”이라고 절벽 위에 써 놓았다.

국회에서는 황금어장 보호를 위해서도 독도등대 설치가 시급하다고 정부에 등대 설치를 촉구했으며 국회에서 독도에 등대설치 문제가 논의 된지 얼마 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등대설치를 지시하여 독도 등대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4년 8월1일 부터 해군경비정의 협조로 등대 설치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고 독도에서는 독도의용수비대의 도움을 받아 자재를 운반하여 1954년 8월10일 등대 건립을 완료, 점등했다. 독도등대를 설치하고 세계 각국에 고시를 하자 일본국에서는 1954년 8월과 1955년 9월 2회에 걸쳐 항의가 있었으나 정부에서는 하등의 논의 될 바 아니라고 일축했다.

독도등대는 등대원이 상주 관리하는 유인등대로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및 1974년 해상에서의 인명안전을 위한 국제협약(SOLAS)제5장 규칙13에 따라 설치하여 해상교통안전을 도모하는 국제적 공기이며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나 일본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남중국해에서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등대를 설치하고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중국이나 대만에게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의 이중성 있는 행위에 분개 할 것이 아니라 당사도 등대에서 일본인을 배척하기 위하여 선열들의 분투하였던 일들이나 독도를 지키지 못하면 본토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하고 절해고도에서 독도등대를 지키는 등대원들 그리고 독도경비대원들의 노고와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힘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석영국(전 해양수산부 항로표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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