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의 관풍(觀風)> 지방의원 ‘주먹질’ 국제적 망신...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쇄신을

<김성의 관풍(觀風)> 지방의원 ‘주먹질’ 국제적 망신...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쇄신을

  • 기자명 김성
  • 입력 2019.02.12 07:32
  • 수정 2019.02.1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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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의원 전원사퇴추진위원회가 지난달 11일 오전 경북 예천군의회 앞에서 '가이드 폭행' 사건에 중심에 선 박종철 의원을 비롯해 군의원 전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예천=연합뉴스
예천군의원 전원사퇴추진위원회가 지난달 11일 오전 경북 예천군의회 앞에서 '가이드 폭행' 사건에 중심에 선 박종철 의원을 비롯해 군의원 전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예천=연합뉴스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이 해외연수 중 현지 가이드에게 주먹질한 사건이 미국 법정에서 56억원짜리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번져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더구나 손해배상 청구대상에 폭행 당사자인 당시 예천군의회 박종철 부의장뿐만 아니라 폭력을 방조했다며 예천군의회까지 포함시켜 자칫하다간 재정자립도 12.7%에 불과한 군 예산으로 돈을 물어줄지 모르게 됐다.또 여성 접대부가 있는 유흥업소를 소개해달라고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전국적인 비판이 빗발쳤다. 이처럼 예천군 명예가 크게 실추되면서 설 명절을 앞두고 특산품 판매마저 뚝 떨어져 농민들이 시름에 빠졌다. 예천군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로 구성된 예천명예회복 범군민대책회의는 군의원 전원사퇴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활빈단은 서울역에서 ‘예천특산품 팔아주기’ 캠페인을 벌였고, 군의원들에게는 꼴뚜기를 선물로 보냈다.

이에 반해 예천군의회의 대응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가이드를 폭행한 당사자였던 박종철 의원은 부의장직을 사임하면서 “가이드를 구타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영상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드러났다. 예천군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태연히 궐위된 부의장을 선출하였다. 또 윤리위원회에서 3명을 제명키로 하고서도 2명만 제명시켰다. 예천군민들이 요구하는 ‘전원사퇴’와는 너무 동떨어진 조치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예천군이 선거구인 자유한국당 최교일 국회의원이 미국 뉴욕 방문 중에 스트립바에 들렀다는 현지 가이드의 폭로가 나와 정가(政街)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최 의원은 “폭로한 가이드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 위촉장을 받은 사람으로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는 관광성 ‘외유(外遊)’가 많아 비판을 받아 왔다. 지방의회 의원들에 대한 불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권자들은 지방의원들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선봉에 서서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정치적 인재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소신은 커녕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원 신세에다, 권위주의적 신유지(新有志) 행세를 하는 두 얼굴의 ‘정치꾼’으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아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유권자들이 지방의원을 견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잘못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일정한 법적 절차를 거쳐 퇴출시키는 ‘주민소환제’가 있다. 그러나 그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서 이 법이 제정된지 12년이 지나도록 단 8건만 처리됐을 뿐이다. 지방선출직은 당선 1년 이내에, 임기만료 1년을 남겨두고는 주민소환을 못하도록 되어있다. 또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지 않으면 개표함을 아예 열지 못한다. 이렇게 주민소환제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지방 선출직들은 유권자들의 비난에도 ‘소나기는 피해가면 된다’는 식으로 무시해 왔다.

2018년 7월부터 임기가 시작된 예천군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고, 그래서 예천군민들은 자발적인 전원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천군의원들이 계속 버틸 경우 유권자들은 5개월 후인 2019년 7월 이후에야 주민소환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지방의원 편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고 80%이상 의존재원에 매달리고 있는 지방자치 재정을 심사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며, 지역 내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도 기관위임사무라고 하여 지방의원이 손댈 수 없도록 법이 제한하고 있으니 의욕적으로 시작한 지방정치가 곧 실망으로 끝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국회의원은 지방 선출직들을 자기 선거구 지지층 관리인 정도로나 여기고 있고, 중앙행정 관리들 역시 지방공무원을 무능력자로 무시하여 권한 이양에 인색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래서 지방에서 재정면에서 ‘20% 자치’, 권한면에서 ‘30% 자치’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독재정권시절이나 다름없이 ‘수퍼갑(중앙행정)’이 여전히 지방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천군의회 사례를 보는 시각도 각각 다를 것이다. 중앙행정 관리들과 중앙집권주의자 쪽에서는 “아직도 자치역량이 성숙되지 않았다”며 재정과 권한의 이양을 늦추려 할 것이고, 지방분권주의자들은 “중앙정부가 여전히 중요한 권한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인 발전 노력을 포기한 상태여서 생긴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기형적 지방자치제도가 가져온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방치해 왔다. 따라서 지방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여기에 맞는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 해 10월 문재인 정부가 큰 맘 먹고 지방자치를 송두리째 뜯어고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름하여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다. 개정안의 전체적 핵심은 △주민주권 확립 △자치단체 자율성 확대 및 투명성·책임성 확보 △지방-중앙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로의 전환 등 3가지이다.

지방 선출직의 잘못을 응징하는 ‘주민소환제’와 보여주기식 낭비적 사업을 펼 때 주민의사를 묻는 ‘주민투표제’의 성립조건도 완화되어 투표권자 3분의 1이 투표하지 않더라도 투표함을 개봉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지방 선출직들이 유권자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방재정문제도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개선한다.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지방재정분권 3법 개정안이 통과돼 3조 3,000억원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세로 이관된데 이어 현재 8 대 2인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2022년까지 7 대 3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중앙권력이 법률로 옥죄고 있는 지방자치권을 지방에 넘겨주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물론 법률만이 지방자치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마저 방관하는 중앙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회’를 주면서 ‘책임’을 묻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김성(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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