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기 칼럼> 하늘과 우편

<백학기 칼럼> 하늘과 우편

  • 기자명 백학기
  • 입력 2019.01.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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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해다. 새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설레임과 기쁜 희망을 준다. 우리들의 인생이 무언가 새해에는 달라지고 더욱 새로워지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리라. 이런 점에서 올해는 특히 ‘하늘’과 ‘우편’이란 언어가 새롭게 떠오른다.

새해 들어 그동안 배달돼온 시집들과 책들을 정리했다. 마치 묵은 짐들을 정리하듯이 집과 사무실에 배달돼온 책봉투를 뜯으며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다.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는 아마추어 시인 작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마치 시란 장르를 가지고 무책임한 언어를 지껄이는가 하면 산문이라는 장으로 자신의 고백이나 선전 같은 문구로 쓸데없이 과포장돼 있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할 수 있으면 책을 내고 시집을 내는 형국에 가벼운 두통이 왔다.

그러면서 문득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쓴 일본의 노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생각났다.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인 다니카와는 10만부 이상이 팔린 시집이 여러 권 있을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다. 그의 시작품들은 미사여구나 복잡한 은유 또는 상징이 없고 아주 쉬운 언어와 비유로 우리들의 감각을 일깨운다. 말하자면 인생이 배어 있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을 처음 대했을 때 놀랐던 점은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테렌스 멜릭의 감독의 시적인 영상이 그의 시집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명장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펼쳐 읽어내려가는 다니카와의 시편 들 속에는 ‘우주’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가 22살 때 썼다는 시창작론에서 이미 우주적 언어 의미의 ‘하늘’과 사회적 언어 의미인 ‘우편’을 통해 우리 들 삶과 작품의 근원적 생명성을 간파해냈던 다니카와 슌타로이다.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 우리는 예술작품을 왜 마주하는가. 우리는 왜 예술이라는 장르를 인정하는가. 우리는 예술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쾌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우주’ 코스모스(cosmos)의미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사회와의 관계 등 성찰과 관계를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미국의 철학교수이며 영화감독인 테렌스 멜릭은 그동안 <천국의 나날들><씬 레드 라인>등 시적인 영상이 탁월한 영화들과 비교적 최근 작품인 <트리 오브 라이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은 ‘하늘’이라는 우주적 교신과 ‘우편’이라는 사회적 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가령 그의 영화들에서 두드러진 ‘오버 딥 보이스’ 기법은 삶과 삶 사이의 아름다운 계곡과 바다와 하늘을 은유하고, 고전과 현대를 사유하는 형식이다. 덧붙여 우리 삶의 다양한 사회 관계망 속의 의미와 행복을 탐구하는 서정을 담고 있다.

그의 영화적 은유와 탐구는 다니카와의 시편인 <산다>에 그대로 담겨 있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성찰하는 시인과 영화감독이 이 시편들 속에서 언어와 이미지로 만나고 있는 놀라운 광경이다.

“ 살아 있다는 것/지금 살아 있다는 것/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나뭇잎 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보는 것/재채기 하는 것/당신의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그것은 플라네타륨/그것은 피카소/그것은 알프스/아름다운 모든 것을 만난다는 것/.....//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지금 어디선가 태아의 첫울음이 울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것//살아 있다는 것/새가 날갯짓 한다는 것/바다가 일렁인다는 것/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당신의 손의 온기/생명이라는 것.

<산다>작품인 이 시행들은 온전히 테렌스 멜릭 감독의 시적 영상이 되어 그의 영화들에 이미지들로 춤을 추며 흰 스크린을 수놓는다. 그의 영화 들 속에서 그네가 흔들리고 있고, 새가 날갯짓하며, 바다가 일렁이고, 달팽이가 기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의 온기가 느껴지며, 어디선가 태아의 울음 소리가 사운드로 흘러나온다. 인생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오버 보이스로 화면 위에 띄워놓은 방식을 보라.

시와 영화가 완벽하게 결합한 순간이다. 일본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생전에 영화를 두고 “카메라로 쓰는 시”라고 정의한 바, 제대로 부합되는 최고의 표현이다.

이처럼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들과 테렌스 멜릭 감독의 영화들 속에 ‘하늘’과 ‘우편’을 사색하는 날들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60년만에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는 ‘하늘’이라는 우주적 코스모스의 관계에 대해 더욱 성찰하고 ‘우편’이라는 사회적 언어가 주는 울림처럼 따스하게 서로 소통하고 보듬어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백학기(시인ㆍ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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