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맛집을 정하는 법

여행 맛집을 정하는 법

  • 기자명 손혁기 SR 홍보부장
  • 입력 2024.03.2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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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먹는 것이 절반이다. 어떤 여행이든 먹은 음식들은 좋은 쪽으로도, 그렇지 않은 쪽으로도 미각과 후각, 시각을 자극하며 기억 속에 남는다.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고 말한 것처럼 여행지에서의 먹거리는 우리의 여행이 어땠는지 한 장면으로 정리해 준다.

일도 먹는 것이 절반이다. 홍보나 대외업무를 주로 하다 보면 외부인과 만남이 잦다. 상대방과의 아이스 브레이크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식사다. 남녀가 처음 만나 차를 마시고, 식사하고, 더 친해지기 위해 술잔을 부딪치는 것과 같다. 식사를 곁들인 미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음식점과 메뉴 선택이다. 여기서 만남의 성패가 절반은 결정된다.

첫 미팅은 대부분 한식이다. 한식의 한상차림은 즐기지 못하는 식재료가 한 두가지 있어도 다른 선택지가 많다. 한식으로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하고 나면 다음 만남에서는 따뜻하게 고기를 굽거나 담백하게 회를 먹거나 화려한 중식이나 독특한 동남아 음식 등으로 세분화한다. 특별한 것을 함께 먹는 경험은 서로의 말에 신뢰를 더한다.

문제는 맛집을 어떻게 고르느냐다. ‘결정하는 마음공식에 따르면 후보지가 많으면 선택의 즐거움이 커진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높고 결정이 중요하면 선택의 괴로움이 커진다. 다행히 맛집은 후보지가 넘쳐나고, 한 끼는 삶을 좌우할 만큼 큰 결정이 아니다. 불확실성만 낮춘다면 맛집 선택은 즐거운 경험이다. 관건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낮출 것이냐다.

맛집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가장 흔한 방법은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 구글맵에 있는 맛집 평점과 리뷰다. 포털 리뷰 덕분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단골 고객을 다져온 노포와 젊은 셰프가 새로운 감각으로 차린 신생 맛집이 당당히 경합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리뷰와 평점이 맛집 선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만큼 광고마케팅회사와 댓글 아르바이트도 몰렸다. ‘진짜 맛집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영수증 리뷰, 진짜 고객 확인절차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영특한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새 시장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다녀본 식당들과 평점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면 맛이나 서비스가 극히 나빠서 가면 후회할 만한 집을 걸러내는 정도로만 유효하다. 리뷰와 평점의 혼돈도 있다. 리뷰가 많은데 평점은 3.5점인 식당과 리뷰는 적은데 평점이 4.5인 식당 중에서 어느 곳이 더 평판이 좋은 집일까. 결국 평점은 평점일 뿐 불확실성을 확실히 낮춰주지는 못한다.

그러면 블로그나 기사에 소개된 식당들은 어떨까. 이런 식당들은 대게 지방자치단체나 행사를 대행하는 여행사들이 인플루언서를 초청해서 소개한다. 관광 활성화를 위한 홍보의 기회인 만큼 지역에서는 가장 맛있고, 특색있는 집을 찾아서 맛집 경험을 제공한다. 문제는 좁은 지역사회의 특성상 맛의 판단에 인맥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느 의원님의 가족이 하는 식당, 어느 국장님의 사모님이 하는 식당 등.

10여년 전 입맛이 한참 예민하던 시절에 지역에서 열린 국제행사 홍보를 담당했다. 중앙지 기자단 초청행사를 준비면서 지역의 맛집을 찾았다. 현지 인사에게 물었더니 잠시 고민을 하고는 전화를 걸어 예약까지 순식간에 처리해 줬다. 현지인 맛집을 소개받았다고 좋아했는데 식당은 맛이 특별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위생상태도 깔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식당은 현지 인사의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어떻게 지역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국제행사를 준비하면서 최선의 식당을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인이 하는 식당을 소개해 줬을까. 공사 구분을 참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그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뻔히 아는 사이에서 기자들을 다른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지인과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 곤란하다. 공직에 임하면서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계하라는 말은 큰 인허가와 관련된 영역까지는 통제하지만 맛집같은 작은 곳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맛은 취향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니.

그러면 맛집 만들기 홍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서 투자로 수십조 원의 부를 쌓은 레이 달리오의 질문법을 빌리자면 맛집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맛집을 어떻게 아느냐가 중요하다. 유튜브나 블로그, 지도에서 내가 본 맛집 정보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통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레이 달리오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하자면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맛집을 소개하는 직업이 아닌 자신의 영역과 기준으로 음식을 소개하는 이들이 있다. 광고대행사 사장의 국밥 여행, 요리사의 노포 기행, 술 좋아하는 가수의 식당 여행 등. 물론 이런 정보라고 다 본인에게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예 본인이 하나의 관점을 갖는 방법도 있다. 여행지에서 빵집을 찾는 빵 투어처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기준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지역에서 식당을 찾아보는 것이다. 해장국을 좋아한다면 그 지역은 무엇으로 해장하는지. 콩나물, 우거지, 시래기, 돼지등뼈, 선지, 소머리, 황태, 다슬기, 곰치, 재첩, 굴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변주를 찾아보며 해장국 한 그룻에 담겨있는 지리적 특성이나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방법이다.

꽃피는 3월과 4월은 의외로 여행의 비수기다. 때마침 고속열차 SRT가 할인 상품을 내놓았고, 고속철도 개통 20주년을 맞아 KTX도 각종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한다니 부산 돼지국밥과 광주 돼지국밥이 얼마나 다르게 맛있는지 알아보러 훌쩍 떠나는 여행도 좋을 듯하다. 맛난 봄을 찾아.

손혁기(SR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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