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침 지우기와 날리면

가래침 지우기와 날리면

  • 기자명 서재영 교수
  • 입력 2024.02.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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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뇌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면서 그도 옛말이 되었다. 한번 생성된 정보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따라다닌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인의 허물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기에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물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절대권력이라면 권력의 허물은 은폐되고 실시간으로 지워지기도 한다.

가래침 지우기 경쟁

옛날에 아무 곳이나 가래침을 뱉는 임금이 있었다. 신하들과 산책하다가도 가래침을 탁 뱉었다. 예의 없고 불쾌한 행동이었지만 누구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가래침을 뱉기만 하면 누군가가 재빨리 밟아 흔적을 지웠다.

심지어 신하들은 더러운 흔적 지우기를 은근히 즐기는 듯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적으로 가래침을 밟아 문질렀기 때문이다. 단지 허물을 덮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경쟁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래침 지우기에 몰두한 이유는 허물을 덮기 위함이 아니라 임금의 눈에 띄고 싶은 욕망의 몸짓이었다.

간교하고 무능한 자들일수록 가래침 지우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실력으로 임금의 눈에 띄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가래침 지우기는 자존심만 버리면 가능했다. 문제는 그것도 노리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 하찮은 일도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매번 기회를 놓친 한 신하는 가래침이 바닥에 떨어진 뒤에는 늦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자득기(備者得機)라고 하듯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방법은 가래침을 뱉기 전에 미리 움직여야 했다. 기회를 엿보던 신하는 마침내 가래침 돋구는 기미를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공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재빨리 발을 들어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의욕이 과했던 탓에 그만 가래를 뱉기도 전에 임금의 아구창을 걷어차고 말았다.

허물을 덮고, 때를 알고, 정도를 아는 지혜

백 가지 우화를 담고 있는 백유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짧지만 다음과 같은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첫째는 은악양선(隱惡揚善)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일이나 잘한 일은 드러내는 것이다. 요순시대 순임금이 그렇게 했다고 하니 하물며 윗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당연한 미덕이다.

둘째는 식시달무(識時達務)이다. 어떤 일이든 때를 알아야 일을 잘 할 수 있다. 화로가 아무리 따뜻해도 여름에 반가울 리 없고, 부채가 아무리 시원해도 동지섣달에는 달갑지 않다. 어떤 일이든 때와 장소에 맞아야 성과를 볼 수 있다.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다.

셋째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도가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비록 의도가 좋은 일이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일을 망치게 된다. 군주의 허물을 덮고자 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가래침을 덮으려다가 아구통을 걷어차는 낭패를 보게 된다.

털을 불어 상처 난 곳 찾기

작금의 대한민국에도 이와 같은 가래침 지우기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대통령의 비속어와 함께 등장한 소위 날리면 사태다. 60%에 가까운 국민들의 귀에는 바이든으로 들렸지만, 대통령실에서는 날리면이라고 했다. 문제는 바이든도 아니고 날리면도 아니었다. 해당 낱말 앞뒤로 등장하는 비속어가 사태의 본질이었다. 날리면이라고 해서 쌍소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과하면 끝날 일이었지만 날리면에 집착하며 가래침 지우기에 열중했다.

사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정부나 언론 관련 기구의 편파적 대응과 파행적 운영이다. 외교부는 대통령의 비속어를 보도한 언론사를 제소했고, 1심 판결에서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알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판결을 빌미로 언론사들의 의견진술을 듣기로 했다고 한다. 의견진술 청취는 법정 제재로 가기 위한 선행 절차로 여겨져 우려를 낳고 있다.

방통위의 행태는 더욱 심각하다. 이동관의 임명으로 홍역을 치른 것도 모자라 야당 몫의 위원을 임명하지 않아 아직도 과반이 공석이다. 여당 측 위원 2명이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것도 문제다. 합리적 절차와 과정이 생략된 결정에 정당성이 따를 리 만무하다. 게다가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이른바 청부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의 노력 때문인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던 시사 프로그램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날아가거나 진행자가 교체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들이다. 날리면에 집착한 이유가 이렇게 날리겠다는 예언이었던 것일까? 문제는 이 모든 흐름의 귀결점은 가래침 지우기라는 것이다.

전제군주 시절이라면 가래침 지우기 경쟁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고,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국가다. 게다가 대통령도 UN 연설에서 21번이나 자유를 외쳤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 중 하나는 언론의 자유다.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월터 크롱카이트는 언론의 자유는 단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했다. 아쉽게도 이 정부 들어 언론자유지수는 추락하고 있다.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말이 있다. 짐승의 털을 불어서 상처 난 곳을 찾는다는 뜻이다. 은폐된 것을 뒤져서 허물을 찾아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권력이 숨긴 허물을 파헤치고, 민주주의를 해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가 조작 의혹의 실체는 무엇인지?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이면에 흑막은 없는지? 디올백 외에 또 받은 것은 없는지 등을 파헤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권력의 부패를 막을 수 있고, 언론이 살고 민주주의와 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언론자유는 민주제도의 입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이 가래침 지우기에만 몰두한다면 민주주의의 입을 걷어차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서재영(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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