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대재해’에 귀천 없다

[기자수첩] ‘중대재해’에 귀천 없다

  • 기자명 한휘 기자
  • 입력 2024.02.0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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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헤드라인을 장식한 뜨거운 감자는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소식이었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약칭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되, 50인 미만 규모의 중소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2년 더 유예기간을 준 뒤 올해 1월 27일부터 확대 시행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보수 정당과 기업계 등지에서는 중소기업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더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 합의는 끝내 불발돼 법령이 지난달 27일부터 확대 시행됐고, 개정안을 두고 추가 협상이 이어졌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에 최종적으로 ‘수용 거부’를 선언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에서는 직접적인 비판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민생 경제를 도외시한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라고 밝혔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에 대해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물며 노동권 보호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고용노동부 장관조차도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과연 이 정도로 비판받아야 하는 일일까.

중대재해법의 확대 적용을 비판하면서 나오는 주요 논지 중 하나는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숙박업소 등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2022년 산업재해 현황 분석 통계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의 단 1%만이 요식업과 숙박업에서 나왔다. 그마저도 요식업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대다수는 업장 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음식을 배달하다 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중대재해법이 주로 규제하는 대상은 사망자의 단 1%만 내는 음식점이 아니다. 산재 사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업과 제조업 등일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표가 있다. 같은 자료에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60.2%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전체 산재 사망자의 과반이 집중된 현실을 그냥 두고 본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동네 음식점이라도 안전 조치 미흡으로 누군가 죽었다면 당연히 문제라는 점이다. 100명 넘는 대규모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크레인이 무너져 죽든, 직원 10명 있는 음식점에서 누군가 관리 소홀로 새어 나온 가스로 인해 폭발 사고로 죽든, 똑같이 귀중한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목숨이 사라졌는데 급을 나눌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중대재해법은 이러한 ‘인재’를 막기 위해 만든 법률이다. 이 정도 규제 사항을 가지고 ‘민생 경제 파탄’까지 운운하는 일부 기업계의 주장은, 오히려 그들이 평상시에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기에 그런 건 아닌지 의심까지 하게 만든다. 조금 번거로울 수는 있지만, 귀찮다고 줄 안 매고 번지점프 할 수는 없다.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 후 일주일 새 3명의 근로자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그간 그늘에 가려있던 이들의 목숨이 ‘안전’이라는 빛을 보기 위해서는, ‘민생’이라는 의제를 악용해 목숨에 귀천을 붙이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빵집 사장님’도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는 이들에게 전한다. 같은 논리대로 ‘당신의 가족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로 당신 곁을 떠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

한휘 기자 hanhyee1111@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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