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처럼 겨울나기

나목처럼 겨울나기

  • 기자명 서재영 교수
  • 입력 2024.01.18 09:32
  • 수정 2024.01.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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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에 살면서 누리는 특전 중 하나는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눈발이 백운대와 인수봉을 하얗게 덮는 날이면 강아지 마냥 어떤 설레임에 이끌려 숲으로 달려가게 된다. 어쩌면 비단 같이 고운 눈길 위로 가장 먼저 나만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매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족적(足跡) 없는 삶이다. 어디를 가든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듯 흔적이 남지 않는다. 어떤 영역이든 수많은 대중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에 의해 이미 단단하게 다져져 있다. 하물며 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공간에 자신만의 족적을 남기는 것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그러나 눈 내린 산길에서는 걸음마다 또렷한 나만의 발자국을 각인할 수 있다. 분분한 눈발에 묻혀버릴 흔적이지만 옛 시의 표현처럼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後人程)’라도 남기는 것 같은 우쭐한 기분에 잠시 젖어보는 시간이다.

소나무의 풍요로움

눈송이가 온 산을 뒤덮어도 골짜기는 한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산 그림자가 나의 발자국을 따라 내려올 때쯤이면 여기저기서 둔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눈 쌓인 나뭇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소리다. 그런 나무를 설해목(雪害木)이라고 한다. ‘눈에 맞아 상처 입은 나무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송이에 맞았을 뿐인데 아름드리나무가 둔탁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법정 스님은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썼다. 쓰러지는 설해목이 내는 소리는 겨울 숲의 외로운 비명 같기도 하고, 삶의 무게가 버거운 존재의 절규 같기도 하다. 설경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질수록 눈송이에 맞아 쓰러지는 설해목의 비명은 자꾸 늘어 간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송이를 맞고 쓰러지는 것은 어떤 나무들일까? 첫째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침엽수들이다. 특히 소나무에는 겨울에도 솔잎이 푸르러 예로부터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다. 그런데 소나무의 그 풍성함 때문에 눈이 조금만 내려도 눈송이가 소복이 쌓인다. 깃털처럼 흩날리는 눈송이도 무게가 있는 법이다. 솔가지에 가만가만 눈발이 쌓이면 수십 년을 버틴 우람한 소나무들도 코끼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어쩌면 겨울을 나기에 소나무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겨울을 맞으면서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겨울 나목의 가난

소나무와 달리 앙상한 겨울 나목은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부러지는 일이 없다. 잎을 모두 떨구고 겨울 산을 지키는 밤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활엽수에는 가지에 눈이 쌓이지 않는다. 이런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잎을 모두 떨쳐내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겨울 산을 지키고 서 있다. 앙상한 나목들은 눈송이 하나 붙을 공간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다. 반면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침엽수는 풍성하지만 그 풍요로움 때문에 꺾이고 만다.

겨울이 되어도 잎을 떨구지 못한 잔가지와 잎은 우리들의 삶과 닮아있다. 욕심이 많을수록 번뇌와 시련이라는 눈송이는 더 많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많은 것에 대해 애착하며 번뇌에 짓눌려 설해목처럼 쓰러지고 만다. 때로 번뇌와 역경은 나뭇가지에 쌓인 눈송이처럼 운치 있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번뇌와 고난이 쌓이면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만다. 잔가지처럼 벌여놓은 일이 많고, 솔잎처럼 탐욕이 많을수록 번뇌와 고통도 솔가지에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쌓여 가는 법이다. 떨쳐버리면 깃털같이 보잘것없는 번뇌와 고난도 축적되면 설해목처럼 우리의 삶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

같은 나무라도 곧게 서 있는 나무보다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가 설해를 더 많이 입기도 한다. 평상시에는 비스듬히 자랐거나 구불구불한 나무가 더 멋지게 보인다. 그런 나무는 분재로 쓰이기도 하고, 정원수로 선택받기도 한다. 하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그런 나무는 무게를 버티지 못한다. 하늘 향해 곧게 가지를 뻗은 나무는 설혹 설해를 입어도 가지 한두 개가 부러지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하지만 나무 자체가 비스듬히 자란 나무는 똑같은 양의 눈이 내려도 한쪽으로 쏠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뿌리가 통째로 뽑히고 만다.

기후위기의 겨울 나기

우리의 삶도 굽은 나무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경과 고난이 닥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심성이 비뚤어지고,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비탈에 선 굽은 나무처럼 위기가 가중되기 마련이다. 반면 심지가 곧은 사람은 세상의 번뇌와 유혹,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곧게 자란 나무처럼 부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역경을 이겨낸다.

설해목과 나목을 보면서 우리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 나목처럼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여름 동안 무성한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비로소 우람한 나무의 줄기가 드러난다. 잔가지와 잎에 가려져 있던 나무의 근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것을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한다. ‘금풍(金風)’이란 황금빛 산천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뜻한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을바람을 만나면 나무의 잎은 모두 떨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조락(凋落)이라고 부르며 슬퍼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무는 강인한 모습으로 우뚝 서게 되니 그것이 체로(體露)’이다. 나무는 잔가지와 잎을 떨쳐버려야만 설해에 당하지 않고 겨울을 이겨낼 수 있다.

나무들이 앙상한 나목으로 변하는 것은 겨울의 고난을 이겨내는 자연의 지혜다. 기후 위기시대 우리도 그런 나목의 자세로 겨울을 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번뇌로 상징되는 솔잎을 떨구고, 더 많이 갖고 이루려는 탐욕의 잔가지를 꺾고 겨울 나목처럼 우뚝 서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혹독한 기후위기의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한 새싹으로 되살아나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재영(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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