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 베켄바워, 향년 78세로 영면

'카이저' 베켄바워, 향년 78세로 영면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4.01.09 13:52
  • 수정 2024.01.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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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일 축구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 AP=연합뉴스)
(사진=독일 축구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 AP=연합뉴스)

[데일리스포츠한국 우봉철 기자] 세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독일의 축구 전설 베켄바워가 영면에 들었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의 유족은 8일(현지시간) dpa 통신을 통해 "베켄바워 명예회장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라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1945년생인 베켄바워는 1958년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뮌헨에서 네 차례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국가대표로의 활약도 대단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유로 1972와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카이저(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수비수임에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면서 리베로 포지션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별명이 '한국의 베켄바워'인 것도 베켄바워가 리베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진=독일 축구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항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당시 트로피를 받는 베켄바워 / AFP=연합뉴스)
(사진=독일 축구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항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당시 트로피를 받는 베켄바워 / AFP=연합뉴스)

이후 베켄바워는 1977년 미국 코스모스 뉴욕에서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와 호흡을 맞췄고, 1982년에는 독일로 돌아와 함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현연 은퇴 후에는 서독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에 성공하며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을 작성했다.

감독으로서 정점을 찍은 베켄바워는 1994년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행정가로 변신했다. 2006년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도 역임했다.

베켄바워의 영면 소식이 전해지자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성명을 내고 "독일과 세계 축구의 전설인 베켄바워는 역사에 남을 업적과 우승을 이뤄냈지만, 늘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을 유지했다"면서 "'카이저는 위대한 사람이자 축구의 친구이며 진정한 전설"이라고 추모했다.

알렉산더 체페린 UEFA) 회장도 "베켄바워가 수비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펼친 완벽한 볼 컨트롤, 선구자적인 스타일은 축구 경기 방식을 바꿔버렸다"면서 "진정한 전설에 작별을 고한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베켄바워는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특히, 한국 축구 전설인 차범근 전 감독과 동시대에 분데스리가 무대를 누비며 우정을 나눴다. 또 차 전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 대표팀 코치가 2010년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베켄바워가 취업비차 추천서를 써줬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서 한국을 방문한 이력도 있다. 1979년 서독 대표팀 선수로서 한국 땅을 밟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서독 대표팀 감독으로 방문했다.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 유치위원장 등 행정가 시절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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