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서설(瑞雪)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12.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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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도 딱 4일 남았다. 얼마 동안 겨울 날씨답지 않게 푸근하더니, 지난 한 주일 동안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며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성탄절도 8년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전국적으로 대설특보도 내렸다. 눈이 내리는 날엔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 사이로 하얀 눈발이 펄럭이며 떨어진다. 아직 바닷물이 밀려오지 않은 갯벌도 시베리아 벌판처럼 하얗게 된다. 금송 위에도 호랑가시나무 위에도 작은 소나무 위에도 솜사탕처럼 하얀 눈이 소복하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겨울엔 눈이 내려야 세상이 성스러워진다. 세상은 인간들이 아웅다웅할지라도 하얀 눈이 내리면 만물이 설렌다. 연인들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어른들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설레며 하얀 눈을 맞는다. 수백 마리의 청둥오리 떼가 눈 내리는 하얀 설원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서설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상서로운 눈이 내리니 새해에는 대한민국에 복되고 좋은 일이 많을 듯싶다.

블랙핑크(BLACKPINK)라는 걸그룹이 있다. 블랙핑크는 한국인인 지수와 제니, 태국인인 리사, 한국과 뉴질랜드의 복수국적자인 로제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다. 블랙핑크는 지난 1122일 영국 버킹엄궁에서 진행된 오찬 행사에 영국 측 공식 초청으로 참석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과 윤석열 대통령 부부도 참석했다. 블랙핑크 멤버 4명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뽐내며 버킹엄궁을 구경하고 오찬을 즐기는 모습이 영국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블랙핑크는 2021년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 홍보대사로 임명돼 지금까지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전했다. 찰스 3세 국왕 측은 블랙핑크가 홍보대사로 전 세계에 환경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그 공로를 인정해 찰스 3세 국왕은 문화 예술인 격려 행사에서 블랙핑크에게 대영제국훈장(MBE)를 수여했다. 대영제국훈장은 영국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거나 정치·경제·문화예술·스포츠 분야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 수여된다. 블랙핑크에 앞서서는 영국 출신 가수 비틀스(The Beatles)와 아델(Adele) 등이 MBE를 수상했다. 블랙핑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에도 뜻깊은 수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또 한 팀의 문화외교 사절단이 탄생하였다.

지금은 문화외교 시대이다.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주장해 오던 정책이 문화외교이다. 그 정책이 수년 전 시작된 K-(K-Pop)으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K-컬처(K-Culture)로 꽃을 피우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적 아름다움과 음악과 이야기가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K-컬처 열풍으로 한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한국 음악과 영화, 드라마의 세계적인 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각종 SNS에는 한글과 관련된 게시글이 100만 건 넘게 올라왔다. 우리말 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하는 재외동포와 외국인 수는 약 40만 명(2020)이나 된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는 2021년에 <치맥><한류> 등 우리말 단어 26개가 새로이 추가되었다. BBC는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K-컬처,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한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02,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수상작이 발표된다. “오스카상은기생충입니다!” 오스카 상의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한다.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 직후,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와 같은 기술의 발달로 한국 영화 콘텐츠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언어장벽이 많이 허물어져서 모두가 서로 연결 되어있는 세상인 것 같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일본과 영국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나 오늘 같은 좋은 일로 언어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우수성을 보여준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에 앞서서 처음 한류의 시작은 한국 드라마(K-Drama)였다. 2002년 국내 방송사의 드라마 겨울연가는 그 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일본에서는 탤런트 배용준이 <욘사마>로 불리며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음악 부문, K-팝으로 이어졌다. K-팝은 일본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빠르게 퍼졌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류의 영향력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문화권으로 확장 시킨 꿈같은 사건이었다. 유튜브 게재 52일 만에 1억 뷰를 돌파했다. <강남스타일> 역시 막강한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제 문제는 국내 정치권이다. 정치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많은 것이 정치로부터 출발해 정치로 마무리된다. K-콘텐츠가 우수해 세계로 뻗어나간다 해도 정치적으로 잘못되면 무용지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자신보다 못한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내년 총선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번 대한민국 총선일은 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2024410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저런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가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할 정치인을 선택해야 한다. 2024년 새해에는 한국 정치(K-Politics)K-콘텐츠처럼 해외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얀 눈발이 눈부신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며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무는 하얀 눈을 반기고 하얀 눈도 나무를 감싸 안는다. 서설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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