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어머니

치매와 어머니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12.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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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어머니의 104세 생신을 축하하느라 오랜만에 6남매가 고향 집에 모였다. 1920년에 태어난 어머니는 한 세기를 족히 살아오셨다. 평일에는 돌보미 사회요양사가 있지만 주말이면 형제들이 돌아가며 어머니 돌보미 역할을 한다. 어머니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서만 종일 지내신다. 화장실 오갈 때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아직은 정신이 맑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씩 며느리를 헷갈린다. 아내 이름이 수정이인데 언제나 어머님 저 누구예요?”하고 묻는다. “우리 넷째 며느리, 수정이” “어머님 감사합니다아내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아내를 보고 너는 누구냐?” 하셔서 우린 깜짝 놀랐다. “어머님 수정이요, 수정이. 넷째 며느리수차례를 반복했다. 문제는 그다음 주말이다. 형수인 셋째 며느리가 어머님 저 누구에요?” 했더니 대뜸 수정이하신다. 가족 카톡방에서 그 이야기를 보고 모두 박장대소했지만, 치매 증상이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종일 쓸쓸했다.

최근 충격적인 소식으로 주위의 많은 사람이 놀란 사건이 있다. 소통 강사로 유명한 김창옥 씨의 치매 소식이다. 모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치매 의심 소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인지 및 기억력 테스트 결과가 너무 안 좋았다. 100점 만점에 1점 정도 나왔다. 50대 남성 평균이 70점이다. 그는 숫자 같은 건 거의 기억을 못 한다. 어느 날은 집 아파트 호수가 기억이 없다. 전화번호도 가물거린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져 뇌신경센터에 갔다. 그는 수년 전에도 정신과를 간 적이 있다. 그때는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너무 조심스러웠다. “유명 소통 강사가 정신과에 와서 약 받고 상담하네?”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뇌신경센터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예전 같으면 부끄럽다 못해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전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거만하고 교만했다. 의사가 치매 검사를 따로 해보자고 한다. 자신의 증상이 더 안 좋아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깨달음이 있다.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자신의 두려움을 나누는 지금이 감사하다.

미국 다큐멘터리 여성 감독 데보라 호프만((Deborah Hoffman)이 만든 다큐멘터리 충실한 딸의 불만 Complaints of a Dutiful Daughter, 1994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동료 바네시 호프만의 미망인이자 감독의 어머니인 도리스 호프만 여사의 알츠하이머병 투병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1995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최우수상과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다. 데보라 호프만 감독은 깊은 통찰력과 유쾌함으로 어머니 알츠하이머병의 다양한 단계와 자신의 감정을 기록한다. 처음엔 어머니의 불치병을 치료하려는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혼란스러움과 건망증, 강박관념을 치유코자 하는 욕망이었다. 어머니는 보청기 수리를 보내놓고 이미 찾아왔음에도 수리 가게에 계속 전화를 건다. 치과 치료가 끝났음에도 치과에 연락하고 또 약속을 잡는다. 낙심했던 딸은 어머니가 지금 대학생이라고 하면 어때? 나와 동창이라고 하면 어때? 하면서 현실을 서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갈등의 시간이 지나며 딸과 어머니는 오늘을 인정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이 작품은 가족 관계와 나이 듦과 삶의 변화, 기억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감동적인 현실의 기록이다.

60세 이상 치매 환자가 작년엔 95만 명, 올해는 100만 명이 넘는다는 발표가 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치매 전담 의사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치매의 발병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전 세계 치매 환자들에 대한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생활 방식과 습관에 따라 치매의 발병률을 40% 이상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총인구 대비 노인 인구의 비율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치매 발병의 위험 요소도 증가한다. 치매 환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생활 방식과 개선을 통해 치매의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 새롭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는 등의 창의적인 활동은 치매 예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정신 건강을 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치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김창옥씨나 도리스 호프만 여사처럼 현실을 받아들이며 병을 치유하는 것도 환자 본인이나 가족 간의 갈등을 줄이는 긍정적인 치유 방법이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과 워시 웨스트모얼랜드 감독의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미국 드라마, 2014는 치매에 걸린 앨리스(줄리안 무어)라는 한 언어학 교수의 이야기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교수 생활을 하던 앨리스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신 이상 증후를 느낀다.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앨리스는 소중한 시간 앞에 나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가족들에게 알츠하이머병을 알리고 함께 이 병을 대처해 나간다. 그녀는 치매 환자로서 학회에서 가슴 뭉클한 연설을 한다.

"저는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지옥 같은 고통입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리는 무능해지고 우스꽝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일 뿐입니다. 저는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같은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상실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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