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인연(因緣)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11.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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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숲 소나무 사이로 갯바람이 스친다. 솔잎 향이 온몸을 감싼다. 스치는 갯바람에 마당의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바람개비 날개 사이로 초겨울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텃밭에서 가을 당근 한뿌리 뽑아 대충 씻어 한입 덥썩 물어본다. 입안에 당근의 향긋함이 가득 퍼져간다. 태안의 초겨울 아침이다. 지난 초여름 장맛비 웅덩이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들고양이 새끼는 노랑이와 고등어, 점박이 세 마리다. 어미 삼색이는 새끼들에게 거처를 양보하고 떠난 후 가끔 밥만 먹으러 온다. 어미와 새끼들이 같이 살아도 되련만 들고양이 생리인가 보다. 새끼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주차장에서 자라서인지 주차장에 있는 박스 안에서 지낸다. 초겨울이 오면서 처음 맞는 추위에 어찌할 줄 몰라 해 따뜻한 보온 천을 깔아주었다. 들고양이는 절대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한마디로 촉수엄금이다. 그런데 노랑이는 좀 다르다. 처음에는 쓰다듬으면 도망가더니 이제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들이민다. 집 옆 숲길을 산책하자면 쪼르르 따라나선다. 가끔 오는 어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한다.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이다.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눈치이기도 하다. 아직은 들고양이 생리를 확실히 감 잡을 수가 없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국 대통령이 넷플릭스의 환경 다큐멘터리 시리즈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 2022의 나레이션을 담당했다. 오바마는 국립공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립공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의 피난처이자 과학 탐구의 온상이다. 인류가 야생 지역을 보호하기 시작한 때만 해도 이렇게 중요한 곳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 10개의 국립공원의 다양한 동식물 군을 소개한다. 칠레 파타고니아 국립공원, 케냐 차보 국립공원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국립공원 생태계도 매우 중요하다. 국립공원이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지킬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환경부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들고양이 관리를 강화했다. 들고양이 생태계 보호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중성화 방식도 바꾸었다. 기존의 정소와 난소를 제거하는 방식(TNR)에서 정관과 자궁의 통로를 차단하는 방식(TVHR)으로 바꾸었다. TVHR은 들고양이의 생식 본능은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지만 밀도는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 환경부는 국립공원 지역 들고양이에게 새 보호 목도리도 씌우기로 했다. 새 보호 목도리는 원색의 천으로 만든 목도리이다. 고양이의 목에 채워 새나 다른 동물이 고양이의 접근을 잘 인식하도록 한다. 쥐들의 경우 색감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 보호 목도리를 찬 고양이의 쥐 사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국립공원공단은 탐방로 등에서 들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자는 홍보 활동도 펼친다. 고양이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이지만 야생에서 사는 들고양이는 새나 양서류와 파충류, 포유류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잡은 동물을 재미 삼아 죽을 때까지 사냥 연습하는 습성도 있다. 야생동물의 개체수를 감소시키고 멸종까지 일으킨다. 애완동물로 도입된 고양이는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에 서식하지 않았던 외래종이다.

수년 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에서 모 국회의원이 주장했다. ‘길고양이는 백해무익하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하기 어려우니 안락사시켜야 한다.’ 당시 소위에선 동물보호법 개정안 중 모든 길고양이를 구조ㆍ보호 대상에 포함시키고, 중성화 후 방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의 발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그 발언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글도 올라왔다. 그 의원은 이처럼 주장했다. ‘개체수 조절에 따라서 중성화 시키는 것은 좋지만 현재 사회문제 되고 있는 멧돼지나 고라니도 심각하다. 들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들고양이가 우리 주변에 존재함으로 우리 사회에 유익한 점은 한 가지도 없다. 이 법이 분명히 악법이다. 악법을 그냥 보고 둘 수는 없다. 들고양이 1마리 중성화시키는 데 10만 원 이상의 경비가 든다. 이 경비를 사람 복지 차원에서 써야 한다. 백해무익한, 한 가지도 이익되는 부분이 없는 들고양이를 위해서 10만 원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분명히 악법이다.’

우리 집 들고양이들은 태어나 반년이 지나면서 거의 매일 두더지를 잡았다. 최근에는 큰 쥐를 잡아 주차장에 두었다. 들고양이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더군다나 생명을 그렇게 쉽게 안락사시키는 것은 생명 윤리적으로도 전혀 옳지 않다. 살아가는 환경이 열악한 들고양이의 평균수명은 2년에서 5년 정도이다. 새끼들은 태어난 후 생존율도 지극히 낮다. 어미는 어린 새끼들을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기 위해 자주 옮긴다. 그러다 보니 배수관 같은 곳에 숨겼다가 많은 비가 내리면 익사해 죽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른 짐승에게 희생당하기도 한다. 우리 집 들고양이 노랑이와 고등어, 점박이는 장맛비 웅덩이 속에서 익사 직전 구조되었다. 그것도 서로에게 큰 인연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의 한 글귀가 떠오른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공생할 때 더 행복하다. 인간과 자연과의 인연을 더 많이, 더 깊이 이어가는 방법을 찾고 맺어가야 할 시대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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