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계절의 김치 이야기

김장 계절의 김치 이야기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11.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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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날씨가 초겨울처럼 쌀쌀하다. 세월이 갈수록 봄가을이 짧아진다. 태안 법산리 들판은 고추 수확이 끝나고 새롭게 난 마늘 싹들이 파릇파릇 새봄 같은 풍광을 이룬다. 겨우 내내 차가운 바닷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내년 여름에는 한 알의 마늘이 통마늘로 태어난다. 생강은 지금이 한창 수확 철이다. 속이 꽉 찬 배추도 더 영글어지고 무도 더 이상 크지 않을 정도로 튼실히 보인다. 아내는 김장 준비 생각에 분주하다. 멸치 새우젓갈은 벌써 준비했다. 소금은 일본 후쿠시마 방류 이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동네 염전에서 미리 구입했다. 빨간 고추를 갈아 고춧가루를 준비한다. 싱싱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김치 속을 만들면 김장 준비 끝이다. 법산리 바닷가에 사는 원어민들은 배추를 바닷물로 절인다. 바닷물에는 미네날이 풍부해 김장도 훨씬 맛깔스럽다. 고구마 마늘밭에 바닷물을 뿌려주는 이유도 미네랄이 풍부해서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의 두 번째 영화화 작품인 식객: 김치전쟁, 2009이라는 작품은 김치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백동훈 감독과 김길형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 속의 배장은(김정은 )은 과거 술장사를 하던 어머니 수향(이보희 )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집을 떠났다가 10년 만에 돌아온다. 그녀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춘향각을 처분하려 하자 성찬(진구 )이 이를 막기 위해 김치 대전에서 그녀와 대결을 펼친다. 영화는 우리의 식생활과 도저히 뗄 수 없는 김치를 소재로 장은과 성찬, 두 요리사의 대결을 그려낸다. 관객들은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미세한 차이, 김치 맛의 신비한 세계를 기대한다. 김치 대전 첫 번째 라운드의 과제는 백김치이다. 장은은 백김치에 사용할 전통적 방식의 자염을 만들기 위해 갯벌을 갈고 해수를 채취하고 정제한다. 진구는 요리뿐 아니라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오해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깊은 내면연기를 보여준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김치를 소재로 제작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도 로케이션 촬영을 했던 김치칸 Kimchikhan, 2009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이다. 이 작품은 건강식품으로서 김치의 효능과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연출을 맡았던 신홍식 감독은 패스트푸드 등 유해 식품의 위험 속에 살아가는 미국인에게 한국 전통음식인 김치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제작을 시도했다. 영화는 까다로운 입맛과 날카로운 비평가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미식가들이 김치를 맛보는 장면과 광주에서 열리는 김치 축제 등 한국의 전통음식 문화 현장이 담길 예정이었다. 영화에는 31개 김치 관련 메뉴가 등장한다. 서양인 입맛에 맞도록 퓨전 방식으로 재해석한 김치도 있다. 미국 사회의 비만 문제를 고발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 Super Size Me처럼 김치칸이 비만 문제가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감독은 발효식품인 김치의 감칠맛은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매운맛에 이어 6번째 미각을 자극하는 맛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하면 누구라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김치와 불고기이다. 김치는 경제적 여건이야 어찌하든 언제나 한국인의 식탁을 차지한다. 김치의 어원은 침채(沈菜)라는 한자어에서 나왔다. 침채는 문자 그대로 소금물에 담근 채소라는 뜻이다. 16세기경에 한글로 딤채라고 하였다. 그 후 짐채, 김채를 거쳐 19세기에 김치로 정착된다.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이어 왔다. <삼국사기>에는 김치와 유사한 발효식품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는 장에 담근 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는 시 구절도 있다. 김장의 역사 역시 천 년을 훨씬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역사 깊은 한국의 김치 김장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2013년 지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우리의 김치를 중국의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재작년 트위터 계정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1회용 장갑을 낀 채 갓 담근 김치를 들어 올린 사진을 포스팅했다. 유튜브 구독자 1400만명을 보유한 중국의 전통문화와 일상을 소개하는 스타 블로거 리쯔치도 김장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리쯔치는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김치는 한국 음식이라고 발언한 한국의 유명 유튜버의 동영상이 중국에서 돌연 삭제되는 등 한중간 김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발효식품인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에서 김치가 코로나19에 따른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세계 김치 수요가 크게 늘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김치 수출량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20년 김치 수출액은 13,152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44%나 증가한 수치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김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김치 종주국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김치맛의 비밀은 유산균에 있다. 한국 김치의 맛을 중국산과 차별화하고 유통기간을 늘리는 핵심 기술이 유산균이라는 것이다. 중국산 김치는 한국산 가격의 1/6에 불과하지만 발암 가능 물질인 아스파탐을 85%나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 업계는 테루아 개념을 강조해 칠레나 호주 등지에서 만드는 저가 와인과 차별화하고 있다. 테루아는 포도가 자라는 땅과 기후 등 와인생산의 기본이 되는 최적 환경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김치도 가격을 초월한 유산균 기술 등을 강조해 품질로 중국산과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국산 김치는 발효하며 유산균 100억 마리가 증식하는 K푸드의 상징이다. 세계 속에 우리 김치를 선양해 가도록 정부와 김치 연구기관의 더 많은 관심과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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