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질론’ 불 지피는 클린스만의 선수 파악 그리고 직업윤리

[기자수첩] ‘경질론’ 불 지피는 클린스만의 선수 파악 그리고 직업윤리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3.09.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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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논란도 있었지만, 믿어보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흐른 지금, 그는 역대 감독 중 가장 빨리 축구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물론 못 이길 수도 있고, 첫 승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클린스만호에는 더 큰 아쉬움이 있다.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기용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부임 직후 치른 3월 A매치의 경우 선수들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로는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열심히 하고 있다”라는 클린스만 감독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라운드 내 선수 기용 등에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웨일스전을 살펴보자면 교체 투입된 이순민이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 등 수비적인 위치에서 팀이 필요한 부분을 메워주는 자원이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이순민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했다. 왕성한 활동량이 장점으로 꼽히는 선수지, 공격적인 재능이 빛나는 선수는 아니다. 그저 황인범이 뛰다 나온 자리에 아무런 변화 없이 세운 것이다. 이순민은 이후 박용우가 교체되고 나서야 주 포지션인 3선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교체 전략이 전술 변화 대신 빈자리 채우기로 밖에 보이지 않은 이유다.

이날 측면에 배치된 홍현석도 마찬가지다. 속도와 돌파력은 떨어지지만, 패스 능력이 좋고 한 방을 갖췄다. 소속팀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돼 A매치 직전 멀티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중앙 지향적인 그를 측면에 배치해 오버래핑에 능한 수비수 설영우와의 조화를 노린 듯 보였으나, 세부 전술이 따라주지 않으니 홍현석은 경기 내내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처음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페루와의 경기에서 포백 수비의 오른쪽 측면을 맡은 안현범이 희생양이다. 안현범은 공격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선수로 스리백의 윙백 역할에 적합하다. 그런 선수를 포백에서 수비에 집중하도록 했으니, 제대로 된 활약을 펼쳤을 리 만무하다.

앞서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에서의 안현범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자연스레 이번 A매치를 앞두고 광주 소속인 이순민의 플레이를 확인했을지도 의문이 생긴다.

감독 능력 외 부임 전부터 문제점으로 지목됐던 재택근무, 해외 체류 기간 동안 보여준 왕성한 부업 활동도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 후 국내에 체류한 기간은 2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와 가깝다는 이유로 서울 대신 고양시에 거주하고, 연령별 대표팀까지 살필 수 있도록 사무실 등을 요구했던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미국에 머물며 여러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모두 대표팀과 무관한 이야기였다. 또 대표팀 소집 기자회견은 생략해놓고, AS모나코와는 인터뷰를 하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불참했지만, A매치 기간인 10일(한국시간)에 열린 뮌헨과 첼시 간 자선 경기에도 참가하려 했다. 다섯 경기째 무승에 그치고 있던, 대표팀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를 바로 그 시점이었다.

뚜렷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질문에는 “세대교체 과정 중”이라는 동문서답만 내놓고 있다. 여기에 불성실한 태도까지 이어지니, 발전 없이 정체된 대표팀의 모습에 불만만 나날이 커져갈 뿐이다.

클린스만과 한국 축구,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우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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