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

후세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8.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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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니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들의 요란한 합창이 새벽을 연다. 오늘도 동네 앞 갯벌엔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져나간다. 요즈음 이곳 태안 법산리는 갯벌의 바지락 채취가 한창이다. 폭염이 와도 국지성 소낙비가 몰아쳐도 주민들은 경운기를 몰고 갯벌로 향한다. 하루 80kg의 바지락을 캐면 20여만 원의 수입이 통장에 들어오니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수입이 된다. 지난 24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었다. 이 바지락 채취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수산업은 끝이라는 어느 어민의 자조적인 인터뷰가 떠오른다. 어떤  정치인은 그 오염수가 4~5년은 지나야 대한민국 앞 바다에 도착한다며 지금은 안전하다고 한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악몽이 겹친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올해 봄 친구가 나무 분재를 선물로 주었다. 연구실에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시들어간다고 전원주택에서 잘 키워보라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서울에서 태안까지 싣고 와 햇볕이 잘 드는 남향 거실에서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더 말라가지 않는가. 결국은 잎도 모두 떨어지고 나무만 앙상하게 남아 보기에도 흉했다. 잘 키워보라는 친구의 부탁도 생각나고 분재에게도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집 옆의 작은 숲이 생각났다. 말라가는 분재를 그 숲에 두면 어떨까 싶었다. 화분이 상당히 무거워 겨우 숲속으로 옮겼다. 잎이 살아나고 싱싱한 멋진 분재로 재탄생하기를 기원했다. 아침저녁으로 살피는데 한 보름 지났을까, 새로운 작은 잎이 분재 밑둥지에 하나 둘 보였다. 이 분재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은 분재 밑둥지에서부터 맨 위까지 새잎들이 파릇파릇 무성해지고 있다. 상수리나무 아래 작은 숲이 죽어가는 분재의 치유 장소였다. 그 후론 무슨 화분이나 나무가 성치 못하면 모두 상수리나무 아래 작은 숲으로 옮겨 놓는다. 얼마 전 블루베리 나무를 구입했다. 주인이 작은 2년생 블루베리 나무를 덤으로 주었다. 큰 나무와 같이 비닐하우스 옆에 두었는데 작은 블루베리가 폭염으로 잎이 모두 말라버렸다. 부랴부랴 상수리나무 아래 작은 숲으로 옮겼다. 파릇파릇 새잎이 나기 시작한다. 작은 숲이 치유의 공간이다. 우리도 숲으로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눈도 맑아지는 것처럼 말라가는 나무들에게도 상수리나무 아래 작은 숲이 치유의 공간인 것이다.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리메이크한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혜원(김태리扮)은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실패한 후 고향으로 내려온다. 언 땅에 묻힌 배추를 꺼내 배춧국을 끓여 먹으면서 혜원은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평생 마을을 떠나본 적 없지만 평범한 일탈을 꿈꾸는 은숙(진기주扮)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 과수원을 하는 재하(류준열)가 혜원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다. 혜원은 겨울과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을 지낸다. 스트레스와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신의 삶과 집을 떠난 엄마(문소리扮)를 회상한다. 그녀에게는 자연 요리와 자신에 대한 사랑, 시골 생활이 작은 숲이다. 혜원은 자신만의 숲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왜 왔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배고파서”라고 혜원은 대답한다. 엄마가 해주었던 정성스런 음식을 대신해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먹으며 혜원은 배가 고팠다. 나는 못먹어도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남자친구 도시락은, 사실은 남자친구에게는 부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혜원은 배가 고팠다. 그녀만의 작은 숲은 언제나 평안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고향 친구들과 엄마의 음식과 정이었다. 금방 다시 상경할 거라던 그녀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골에서의 세월은 행복하게 지난다. 혼자 있는 것이 전혀 외롭지 않게 하는 친구와 옆집 할아버지 강아지와 닭,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의미가 된다. 오늘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우리 차를 보자마자 들고양이 네 마리가 반갑게 달려온다. 우리 역시 들고양이들이 반가운 것을 보면 생명이 있는 모든 숨 쉬는 것들이 사랑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하얀 장미꽃 송이도, 주황색 메리골드도, 짙푸른 작은 숲도, 들고양이도, 그리고 풀숲을 뛰어다니는 방아깨비도 사랑스럽고 고맙다.

후쿠시마 원전 설계자인 고토 마시시 박사와 핵 폐기물 전문가인 시와이 마사코씨가 국내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3~40년이 아닌 100년 이상 걸릴 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오염수 처리방식에 있어 해양 방류는 답이 아니라고 한다. 고토 박사는 “다른 대안이 있는데도 그걸 찾지 않고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잔해 냉각 방식을 물이 아닌 공기냉각으로 바꾸면 오염수 발생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사와이씨는 “방사능은 아무리 희석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저 이동할 뿐이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 농도만 이야기하면서 안전을 이야기하지만, 걸러지지 않은 오염수 속 기타 핵종들이 확산한다. 시간이 흐르면 후쿠시마 물고기에는 분명히 영향이 나타난다. 조만간 전 세계 바다로 확산할 것이라 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먹이사슬로 인해 그 마지막 재앙은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며 이는 곧 살아있는 것들의 죽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상수리나무 아래 작은 숲과 혜원의 숲처럼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는 숲을 물려 줄 것인가 아니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흐르는 회복 불가능한 죽음의 바다를 물려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결단해야 한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지구촌을 위해 내 나라만 안전하면 된다는 발상을 이제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멈추어야 한다. “지구의 자연은 우리들의 아버지이며 우리들의 고향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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