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 집사의 꿈

들고양이 집사의 꿈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7.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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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들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새끼 네 마리를 출산한 삼색 들고양이가 폭우 속에서 새끼들 생명을 잃어버릴 뻔했다. 우리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구해 온 후 주차장에 만들어 준 집에서 어미는 두 달 이상 새끼를 잘 키우고 있다. 들고양이들의 특성상 사람에게 들키면 바로 새끼들을 물어 모르는 장소로 옮긴다. 어미 고양이는 지금까지는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듯하다. 새벽이면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밥 달라며 꼬리도 치켜세우고 애교도 부린다. 삼색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우리 일상의 많은 대화거리가 되었다. 생명을 돌보는 작은 기쁨이기도 하다.

일본의 동물생태학자 야마네 아키히로 박사의 고양이의 삶과 생존을 이야기한  ‘고양이 생태의 비밀, 2019’이라는 책이 있다. 고양이 박사로 불리는 저자는 ‘신비한 고양이 세계’, ‘고양이는 대단해’, ‘고양이 연구’ 등 고양이에 관한 저서를 꾸준히 출간해왔다.

인간과 고양이의 조우는 일만 년 전이다. 이후 오늘날까지 인간과 함께 지내오면서 고양이는 야생의 본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양이의 독자적 야생성은 아주 뚜렷하다. 소나 말, 돼지나 오리, 닭 등의 가축은 그 원종이 가축화되어 철저히 인간에 종속됐다. 독립적이면서도 평화롭게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가축은 고양이가 유일하다. 인간 주거지에 있던 쥐를 잡아먹기 위해 고양이는 인간 곁으로 왔다. 인간도 고양이의 유익함을 알고 가까이 살도록 했다. 인간과 고양이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이로인해 독립적으로 사는 고양이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유연한 특성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수컷 고양이는 어느 정도 크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수 주일 동안 방랑한다. 한겨울 발정기가 되면 수컷들은 발정한 암컷을 찾아다니고 몇 날 며칠 구애한다. 임신한 암컷 또한 출산 후 새끼 고양이에게 젖을 먹이고 나서 틈틈이 먹이를 찾아다닌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영화는 다양하다. 그 중 감동적인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 2017)이라는 영화가 있다. 소설 ‘밥이라는 이름의 길고양이’ 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버스킹 뮤지션 제임스 보웬과 밥이라는 길고양이에 관한 실화이다. 마약중독자이자 홈리스인 제임스와 상처 입은 길고양이 밥이 운명처럼 만나 서로에게 삶의 이유가 되고 서로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존재가 된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길거리 뮤지션 제임스는 상처 입은 길고양이 밥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제임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털어 밥을 치료해 돌려보낸다. 제임스는 길거리 생활로 돌아가지만 밥은 자꾸만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이를 운명이라 받아들인 제임스는 결국 밥과 함께 지내며 버스킹 공연을 같이 하게 된다. 제임스와 밥은 뜻밖의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와 마주하게 된 제임스와 밥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주 특별한 동거를 한다. 밥은 신기하게도 제임스 집사의 어깨 위에서 편안히 지낸다. 길고양이 밥이 영화에서도 직접 연기했다. 하지만 고양이 밥은 안타깝게도 202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전에 촬영을 마친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는 2020년 12월에 개봉했다. 인간과 고양이의 교감과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우리도 들고양이 가족과 함께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들고양이 세계도 알아가게 된다. 우리 단지엔 새끼 네 마리를 키우는 삼색이 가족과 새끼 세 마리를 키우는 까망이 가족, 성인 수컷 두 마리가 있다. 삼색이 동료인 어린 수컷은 성인 수컷 두 마리에게 쫓겨서인지 멀리 다른 동네에서 지내고 있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싸움은 보는 우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열하다. 이 단지에서 거의 두목처럼 구는 깡패 누렁이는 덩치가 클 뿐 아니라 생김새도 표범처럼 섬뜩하다. 이 누렁이와 원래 이곳에서 지내던 성인 수컷 치즈는 만나기만 하면 싸움을 한다. 한 녀석이 항복을 하고 얼차례를 받듯이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들고양이 세계의 기싸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새끼 수컷들을 보면 가차 없이 죽인다는 것이다. 적수로 자라기 전 아예 싹부터 잘라버린다는 식이다. 지금 삼색 양이 새끼 네 마리 중에는 분명 수컷도 있다. 이 녀석들이 큰 녀석들의 눈에 띄면 한입거리도 안 된다.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때까지는 잘 키워서 내보내야 한다. 

아내와 같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과연 무엇이 옳은지 논쟁이 붙는다. 아내는 동물의 세계는 동물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이다. 새끼 고양이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해 죽어도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들고양이 세계에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양육강식의 세계가 아닌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물론 인간 세상의 정의 이론을 들고양이 세계에 그대로 대입할 순 없다 하더라도 함께 평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이클 샌델이 가장 공감하는 세 번째 시각인 공동체적인 선을 추구하는 들고양이의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내는 코웃음을 친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추구해 가야 한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속의 제임스와 밥처럼 인간이든 고양이이든 서로에 대한 공감은 평화의 관계를 맺어주는 열쇠이다. 그 열쇠를 통해 우리는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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