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연과 더불어

다시 자연과 더불어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6.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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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수확의 계절을 가을로 인식한다. 그러나 6월이 오면 태안의 들판은 온통 마늘 캐기 손길로 분주해진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마늘이 추운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인 요즘 수확의 철이 된 것이다. 농어촌인 태안은 일손이 부족해 멀리 도심인 대전이나 세종시의 일자리 소개 센터를 의지하기도 한다. 이른 새벽녘부터 누렇게 변한 마늘밭에 도착한 관광버스에서 내린 낯선 이방인들이 마늘 캐기에 도전한다. 일이 서툴다 보니 마늘밭 주인의 성에 차지는 않지만 고마운 손길들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작년 가을에 이웃의 도움으로 적게나마 심은 마늘 캐기에 나섰다. 무슨 농사일이든 허리를 구부려 일을 하다 보니 허리 통증이 늘 신경이 쓰인다. 그나마 이른 아침 부지런한 새들의 경쾌한 울음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하지만 그 새들이 농부들에게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애써 가꿔놓은 콩이나 과일 열매들을 따먹어 버린다.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시기이다. 벌써 아래 집에서는 새그물을 쳐놓았다. 아주 미세한 실로 엮어진 새 그물은 새들에게는 지옥문이나 마찬가지다. 새들이 그 그물에 발이 걸리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새들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새그물 곁에는 아예 접근하지를 않는다. 도심에서 갓 이사 온 어떤 이들은 너무 야박하지 않는가요? 새들이랑 좀 나눠 먹지요라고 한다. 참 낭만적인 발상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63(The Birds)라는 영화가 있다. 는 영국 여성작가 대프니 듀모리에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영화제 시각효과상 부문에 후보작으로도 올랐다. 영화는 새들이 갑자기 인간을 마구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젊고 아름다운 여성 멜라니(티피 헤드런 )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만난 변호사 브레너(로드 테일러 )에게 호감을 가진다. 브레너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고향 집으로 향하던 멜라니는 갈매기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이마에 상처를 입는다. 멜라니가 도착한 후 마을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새 떼들이 일제히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난다. 새들의 공격을 피해 집에 갇혀있던 멜라니와 브레너의 가족들도 결국 마을을 탈출한다.

영화 속의 깨어지는 유리창 같은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폭풍같은 날갯짓들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공포감으로 변한다. 작고 아름다운 새들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잔혹한 괴물로 변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새를 늘 예쁘게 지켜보고 곁에 두기 위해 새장에 가둔다. 하늘과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할 생명들을 아주 작은 공간 속에 가두어버린다. 자연을 아름답게만 여기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착각이다. 어떤 이들은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불러왔다. 최근 온갖 자연 재앙들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바다와 하늘과 땅의 재앙뿐만 아니라 생물들도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 미세한 세균에 의해 지난 3년간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었는가. 인간의 교만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인 줄 알면서도 또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새장 속의 새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생명을 잃는다. 멜라니가 갇힌 좁은 공중 전화박스는 영화 속의 가장 좁은 공간이다. 새들이 마을 사람들의 공간을 점령한다. 영화는 자연을 착취하고 마구잡이로 개발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각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도심에서 새들이 사라지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흥부와 놀부로 우리 모두에게 익숙했던 강남 갔던 제비도 서울 도심에서 15년째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 근교 산을 오를 때면 까마귀 소리만 요란하고 다른 아름다운 새소리는 듣기 힘들다. 새의 개체수 감소는 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가 사라지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지구 환경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도심에서 새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산에는 수많은 터널이 뚫리고 숲은 힐링이라는 이유로 인간에게 침범당하고 있다. 도심도 개발 이전에는 새들의 보금자리인 산이나 숲이었다. 조만간 도심은 새소리 없는 침묵의 날을 맞이할 수도 있다.

농어촌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명체라는 벌들도 사라지고 있다. 봄이면 벌 나비가 난무하던 꽃밭과 꽃나무에도 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연구진은 전 세계 야생 꿀벌 종류가 1990년보다 25%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엔(UN)은 전 세계 벌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라고 했다. 기후 온난화와 코로나19의 창궐,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 등으로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꽃의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도심 곳곳에 벌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대나무로 제작한 벌 호텔이나 벌 정류장을 만들고, 고속도로 주변에 야생화를 심어 꿀 고속도로를 설치했다. 그로 인해 최근 몇 년 동안 도심 속 벌 개체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가디언>의 반가운 소식이다. , 사과, 배 등 인간이 기르는 주요 농작물의 70%가 꿀벌이나 새 같은 동물이 식물이나 과일나무의 수분 활동을 도와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세계기후변화로 인해 조류와 다른 야생동물의 광범위한 멸종이 유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 지표면 온도가 2.8°C 오를 경우, 2100년까지 약 500 여종의 조류가 멸종하고 2,000 여종의 다른 생물들도 멸종 위기에 처한다고 예측한다. 모두 인간의 욕망으로 초래된 결과이다.

앞으로는 블루베리 열매도 새들과 나누어 먹고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유지하며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연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살아야 한다. “계절이 변하면서 새들도 변했다. 새들이 변하면서 나도 변한다. 나를 둘러싼 세계 하나하나가 내 경험의 순환 속으로 섞여 들었고, 그렇게 나는 세계에 연결되었다는 조 하크네스(Joe Harkness)버드 테라피(Bird Therapy)를 곱씹어 본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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