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 구하기

들고양이 구하기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6.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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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CATS)>라는 세계적인 뮤지컬이 있다. <캣츠>는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는 시집을 대본 삼아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이다.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을 했고 1년 후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이다.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며 최고의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이다. 뮤지컬 중 <메모리>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캣츠>는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고양이들이 일 년에 한 번 여는 고양이 축제 '젤리클 볼'에서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양이들은 객석에도 출몰하며, 칼군무와 개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고양이들의 춤과 노래가 작품의 주를 이루고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연출로 흥행에 성공한다. 뉴욕에서의 연속 상연은 20061<오페라의 유령>이 그 기록을 깰 때까지 최고의 롱런(long-run)을 한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별 관심이 없던 고양이를 강아지처럼 돌보게 되었다. 농어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이니 들고양이다. 작년 봄 털이 아주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갓 걷기 시작한 하양 노랑 까망의 세 가지 색인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 집을 기웃거린다. 며칠 동안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모녀 고양이가 안쓰러워 밥을 주기 시작했다. 새끼가 암컷인 것은 올봄에야 알았다. 자기들에게 호의적인 이 집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추운 겨울을 사과 상자로 집을 만들어 준 우리와 함께 보냈다. 소문을 들었는지 서너 마리의 고양이들이 끼니때면 아침저녁으로 모여들고 우리도 기꺼이 녀석들에게 밥을 주었다. 기르는 강아지나 다른 짐승들이 없어 녀석들을 돌보는 일도 작은 기쁨이 되었다. 여름이 오자 그 까만 어미는 또 새끼를 갖더니 네 마리를 낳았다. 들고양이는 특성상 이곳저곳으로 새끼를 옮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배수관 속에 숨겨 기르던 새끼 네 마리가 모두 익사했다. 거의 한 달 내내 밤낮으로 새끼를 찾아 울며 식음을 전폐하던 어미 고양이가 너무 많이 안쓰러웠다. 세월이 약인지라 한 살배기가 된 새끼 삼색이와 잘 지내며 다시 봄을 맞았다.

그의 출판사 어린 자녀들을 위해 썼던 T.S.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젤리클 고양이 축제에서 선지자 고양이인 올드 듀터러노미가 새로운 삶을 받을 고양이를 선택한다. 모든 고양이들이 춤과 노래로 자기를 소개한다. 검비 고양이 제니 애니닷, 바람등이 고양이 럼럼 터커, 부자 고양이자 미식가인 버스터퍼 존스 등이 등장한다. 한때는 어떤 젤리클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그라자벨라가 지치고 나이 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극장 고양이 거스는 지난 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리울 타거의 최후를 회상 연기한다.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 팰리스가 등장해 올드 듀터러노미를 멋지게 구현해낸다. 올드 듀터러노미가 올해의 젤리클 고양이를 선택하려는 순간 그라자 벨라가 메모리를 부른다. 젤리클 고양이들은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라자벨라는 올해의 젤리클 고양이로 등극한다.

우리 집 들고양이들도 다양한 성격을 보여준다. 고양이 중 제일 경계심이 많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삼색이도 올봄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 자신만 우리 집을 오가면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새끼들을 키운다. 주는 밥은 먹지만 만지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문뜩 까망이 새끼 네 마리가 배수관에서 익사한 생각이 나 급히 삼색이 새끼 찾기에 나섰다. 밥을 먹은 후 늘 가는 쪽을 한참 살펴서 가보니 새끼들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쏟아지는 폭우로 축대 빈 공간 사이에 있던 녀석들은 비에 몽땅 젖어 빗물 구덩이 속에 거의 익사 직전이었다. 급히 새끼 네 마리를 주차장에 있는 삼색이 곁으로 옮겨가 상자에 넣었다. 깜짝 놀란 삼색이는 한꺼번에 새끼 두 마리를 물고 빗속으로 튀쳐 나갔다. 한참 빗속을 헤매던 삼색이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나머지 두 마리가 있는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폭우속보다는 주차장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나 보다. 그리고 한두 달을 그 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 어느 날엔가는 다시 독립하여 나가겠지만.

집으로 오는 고양이 중에 완전 갈색 고양이 한 마리는 캣츠에 나오는 깡패 고양이 그롤 타이거와 닮았다. 그 녀석이 오면 사료를 먹다가도 모두 도망가거나 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녀석이 떠나면 남은 밥을 먹기 시작한다. 우린 고양이 세계의 정의를 위해 녀석이 올 때마다 쫓아버리곤 한다. 요즘은 녀석도 자기를 싫어하는 눈치를 채고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수컷 들고양이들은 새끼 수컷들을 물어 죽인다. 암컷을 계속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삼색이도 암컷으로 살아남아 이제 다시 새끼를 낳았다. 삼색이처럼 세 가지 색을 가진 고양이는 XX-염색체를 지닌 99.9% 암컷이다. 그 삼색이로부터 하얀색, 까만색, 노란색, 얼룩이 등이 나온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많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삼색이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몰래 들여다보다 문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 속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 녀석은 살아있다. 우리는 그를 수색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보낼 것이다. 우리는 그를 거기서 건져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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