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등반 역사에 남은 '친일'…신간 '침묵하는 산'

대한민국 등반 역사에 남은 '친일'…신간 '침묵하는 산'

  • 기자명 한휘 인턴기자
  • 입력 2023.05.2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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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침묵하는 산' 표지 (사진=한길사/연합뉴스)
책 '침묵하는 산' 표지 (사진=한길사/연합뉴스)

[데일리스포츠한국 한휘 인턴기자] 민족성의 모든 것이 위협받던 일제강점기. 등산조차도 ‘친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안치운 前 호서대 예술학부 교수가 쓴 ‘침묵하는 산’은 일제강점기의 산악인 김정태의 삶을 중심으로 근대 등반사에 새겨진 친일의 흔적을 조명하는 책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병탄한 이후 산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조선총독부 철도국’이었다. 철도 건설과 영업을 관장한 철도국이 다소 관련 없어 보이는 산에 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인 조선 땅에 철도를 놓기 위해서였다.

이에 철도국 직원들이 ‘조선산악회’를 만들어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총독부도 소위 ‘황국 신민’ 양성을 위해 체력 증진을 목적으로 등산을 장려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이 바로 김정태다. 1937년 조선산악회에 입회한 김정태는 ‘타츠미 야스오’라는 이름으로 창씨 개명을 한 이후 일제의 등반 행사를 주도했다.

징용과 징병으로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끌려간 태평양 전쟁 시기에도 김정태는 동원되지 않고 산을 오르며 명성을 쌓았다. 금강산, 백두산, 북수백산 등이 김정태에 의해 초등되었다.

해방 후에도 국토 구명 사업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 김정태는, 이른바 한국 산악계의 ‘태산준령’이라고 불리며 한국 등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저자는 김정태가 남긴 글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김정태가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인이 아닌 ‘조선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저자는 “친일은 일본과 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종주국으로 여기는 태도를 뜻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내면서 한국 사회의 뿌리는 뽑혔고, 친일의 전면성과 총체성은 온 사회의 얼굴이 되었다”라고 설명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서 서구 근대 알피니즘(등반)을 알게 된 이즈음, 산을 오르는 이들과 방식 그리고 기록을 포함하는 산악 등반의 역사도 이 친일과의 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정태에게서는 피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김정태뿐 아니라 조선 산악인들과 함께했던 일본인 이이야마 타츠오, 이즈미 세이치, 이시이 요시오 등의 삶도 함께 조명한다. 이이야마 다츠오는 일본에 대해 절망하고 조선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고, 이즈미 세이치는 한국의 산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문화인류학자였다.

이들을 소개한 저자는 한국의 산을 좋아했던 이들 모두가 불행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개인을 사회적·역사적으로 종속시킨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 안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대 산악 역사의 그림자를 다룬 이 책은 지난달 28일 출판되어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조선산악회의 북한산 인수봉 등반 사진. '혈맥이 통하는 바위 벗. 인수봉에서. (쇼와) 15년(1940년) 11월 3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한길사/연합뉴스)
조선산악회의 북한산 인수봉 등반 사진. '혈맥이 통하는 바위 벗. 인수봉에서. (쇼와) 15년(1940년) 11월 3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한길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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